전통예절 및 상식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청하인 2022. 5. 13. 23:29
반응형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안녕하세요!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보도되는 것이

윤석열정부의 출범과 청와대개방 기사라고 할수 있죠

그래서 오늘은 조선총독부 관저, 해방후 미군정시에는 미군정사령관의 관저로 쓰였다는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지난 5월 10일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오랫동안 같혀있던 청와대가

개방되었죠. 역사속으로 뭍혀져가는 청와대의 역사도 상식적으로 조금은 알아야겠죠

 

언론에서는 74년만에 개방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 500년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

74년을 합하면 600여 년간 일반 국민에 닫혀있던 청와대가 개방되자

연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럼 이 청와대는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청와대 터의 기원은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도선비기(道詵秘記)에 보면 고려 수도 송악(松岳)은

그 기운을 삼각산(三角山) 즉 한양에게 빼앗긴다고 했고,

지금 서울인 당시 남경을 저울추에 비유하며 삼각산(三角山)에 기대어

도읍을 정한다면 온 세상의 신령스러운 물고기들(神魚)이 한강으로 모일 것이라며

역시 '도선비기'를 언급하며 천도를 주장했구요

 

조선이 들어서자 도읍을 한양으로 천도하고 경복궁을 창건하였죠.

경복궁은 원래 남경 궁궐터에 지으려고 했는데, 터가 협소하여

경복궁은 더 남쪽에 자리를 잡고, 남경 궁궐터는 경복궁 후원에 있게 됐답니다.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과 북악산 사이에 마치 공터처럼 남겨졌는데,

그래서 아마 일부러 풍수적 이유에서 남겨뒀을 것이니

이곳에 청와대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의견과 고려에서부터

이어진 궁궐터로 길지(吉地)라는 의견 등 논란이 있어왔죠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그렇게 현재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후원에 위치하다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소실된 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대에 이르러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하면서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바로 경복궁 경무대(景武臺)라고 합니다

 

즉 경무대는 조선시대부터 있던 이름으로 경복궁 후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이죠.

넓은 터와 함께 몇몇 전각들이 있었는데요.

이 넓은 터에서 왕의 참석 하에 과거 시험을 치르거나 권농, 연무 등이 행해지기도 했죠.

이 "경무대"가 훗날 이승만 정부 시절 경무대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곳을 전각들과 함께 헐고 공원부지로 만들었으며,

1937년에 이 지역을 조선총독부 조선 총독 관저 부지로 선정하여

오늘날의 청와대 구 본관 자리에 관저를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지붕은 보천교(普天敎) 본당이던 십일전(十一殿)의 화려한 청기와를 가져왔답니다.

그래서 관저 지붕이 푸른색이었고요.

1939년 완공 후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네요.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이후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 치하에서 미군정 사령관인

미합중국 육군 중장 존 하지 장군의 관저로 쓰이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하지 장군이 물러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관저를 주면서 그렇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죠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 이후 과거 경복궁 후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게 되었는데요.

이곳에 입주한 첫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망치를 들고 가 모든 일본산 전구와 가로등을 깨버리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답니다

 

서울이 2차례 함락 당한 6.25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임시 관저를 두었는데,

이 건물은 경상남도지사 관사를 거쳐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이 되었구요

환도 이후 경무대가 다시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식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던 김영상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여 결국 김영상은

'화령대'와 '청와대'의 두 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윤보선 전 대통령은 백악관(White House)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청와대(Blue House)'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라는 명칭을

황와대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청색보다는 황색이 대통령에 걸맞는 의미의 색이라며 논란이 일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름을 또 바꿀 수는 없다."며

기존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은 Blue House,

약칭 BH로 부르고 대통령의 지시를 'BH의 하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청와대(靑瓦臺)의 역사와 관람, 기왓장수등 청와대에 대한 모든 것!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에는 협소하고 노후화되어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승만이나 윤보선은 청와대 건물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구요.

이후 취임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면서 증축, 리모델링, 신축하였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구 본관이 전부 철거하고 현재는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만 남아 있죠

 

일제강점기에 북악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능선을 끊기 위해

해당 건물이 지어졌다는 풍수적 해석에 따라, 벽돌과 기와는

기존 능선의 복원에 사용하고 가구와 집기는 보존하는 한편,

샹들리에와 승강기는 대통령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분해 후 재사용을 전제로 경매에 내놨죠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통같이 막힌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였고

결국 2022년 5월 10일,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에 집무실 기능을,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에 관저 기능을 넘겨주고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주요 시설로는 대통령 집무실, 영빈관, 여민관, 관저, 상춘재,

녹지원, 춘추관, 수궁터(구본관터), 서별관, 시화문, 연풍문, 사랑채등이 있구요

청와대는 푸른기와로 되어 있어 청와대라고 한다는데

여러분 혹시 청와대의 푸른 기왓장숫자가 몇장인지 혹시 아세요

청와대는 우리나라 건축 양식 중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는데요.

청기와 15만 장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다음 청와대 개방에 따른 관람에 대해 알아볼까요

지금까지는 제한이 엄청 많았으나 윤석열대통령 취임후 전면 개방하게 되었죠

다만 코로나19 확산 예방 및 개방 초기 방문객 몰림 현상을 막기 위해,

네이버와 카카오톡, 토스 앱을 통해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데요.

요일과 상관없이 매일 개방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당첨되면

해당일에 입장하는 방식이랍니다

5월 22일까지는 개방을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청와대 내에서 이뤄질 예정이구요

아직은 청와대 건물 안 물품 정리 등이 끝나지 않아

건물 내부로는 출입할 수 없고, 추후 개방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실 명칭을 15일 까지 공모중이라고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참석하시어 좋은 이름 지으시고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공정이 통하는 나라, 법치가 통하는 나라, 니편내편 가리지 않는 나라,

성추행이 없는나라,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건설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