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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청하인 2023. 10. 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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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우리나라의 본관성씨를 알아보는 시간, 오늘은 그 11번째 시간으로

우리나라에서 열한번째로 인구가 많다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역대 주요인물, 세거지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본관성씨에 대해 올렸는데요.

댓글에 자기성을 올려달라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차례대로 하나하나 올려드림을 약속하구요

 

지금까지는 인구가 가장많은 순서대로

金海金氏,密陽朴氏,全州李氏,慶州金氏,慶州李氏,晋州姜氏,

慶州崔氏,光山金氏,坡平尹氏,淸州韓氏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들 본관성씨의 유래를 알아보실려면 이 채널의 영상물을 찾아보시는 되구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오늘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세도인

안동권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동권씨(安東權氏)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이죠.

본관은 안동(安東), 예천(醴泉)의 두 본관만 현존한다고 하는데요.

그중 안동권씨가 70만명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예천권씨는 5천명 정도랍니다.

 

일부에서는 예천권씨가 안동권씨로부터 분관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가 않구요.

안동권씨는 김씨에서 나왔고, 예천권씨는 흔(昕)씨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따라서 안동권씨와 예천권씨는 한 뿌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성씨에서 각각 나온 것이라 할수 있죠.

권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안동권씨는

고려 태조(왕건)에 의해 사성(賜姓)되었습니다.

시조는 권행(權幸)인데, 실제 성씨는 신라의 종성인 김씨였다고 합니다.

 

그는 김선평(金宣平, 후 안동김씨 시조), 장정필(張貞弼, 인동장씨 시조) 등과

함께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진 고창현(안동현)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고려에 귀부(歸附)하였는데요

태조가 이들에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라는

작위를 내리고, 권행에게는 ‘능병기달권(能炳幾達權)’하다는

뜻으로 권씨 성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동에는 김선평(후 안동김씨), 권행(안동권씨 시조), 

장정필(인동장씨 시조)을 ‘3 태사(三太師)’라고 하며,

이들을 모시는 ‘삼태사묘’가 있다고 합니다.

안동권씨 시조는 권행인데 반해 이와

또 다른 권씨인 예천권씨의 시조는 흔섬(昕暹)입니다.

그의 선조는 고려중엽 보승별장을 지낸 흔적신이죠.

그는 안동권씨를 아내로 맞았고요.

그의 3세손, 그리고 5세손인 흔승단(昕昇旦)도

모두 안동권씨를 아내로 맞았다네요.

흔씨는 예천지방의 호장을 세습하던 가문이었습니다.

그 후 흔적신의 6세손인 흔섬이 충목왕 때 예빈경(禮賓卿)을 역임하게 되었는데,

마침 충목왕의 이름이 ‘흔’이어서 흔씨 성을 바꿔야 했는데요

그래서 대대로 흔씨의 처가인 권씨를 새로운 성으로 정하여

권섬이라 하고 본관을 예천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안동권씨와 예천권씨는 같은 권세 권(權)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고,

사돈지간이긴 하지만 같은 뿌리라고 할 수는 없죠.

 

고려건국에 공을 세운 안동권씨는 고려조에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요.

권수평(權守平)은 청빈한 관리의 표상으로,

권수평의 증손인 권부(權溥)는 자신을 포함해 그의 아들 5형제와

그의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에 봉해져서

당대구봉군(當代九封君)이라는 명성을 떨쳤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조선 초기 대학자로 이름이 높은 권근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활약한 권율 장군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명문세도가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안동권씨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는 성종 7년(1476년)에 발간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라고 했구요. 당시 중국 연호인 성화연간(成化年間)에 제작되어

성화보라 지칭하게 되었답니다.

안동권씨의 분적종 및 분파는 수중공파(守中公派), 부호공파(副戶公派),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좌윤공파(左尹公派), 별장공파(別將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중윤공파(中允公派),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대의파(大宜派),

추파(樞派), 검교공파(檢校公派) 등이 있구요

 

인구는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총 696,31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럼 안동권씨의 연혁과 인물을 한번 알아볼까요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이죠.

신라말 경애왕 때 부패와 민란으로 국운이 기울자,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입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살해하였는데요

 

이어 견훤이 대군을 몰아 고창현(지금의 안동)을 침입하자,

김선평, 장정필 등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의 8000 대병을 물리쳤는데, 이 공로로 태사의 벼슬과 권씨 성을 하사받았답니다.

안동권씨는 시조 이후 10세(世)를 전후하여 15파로 갈라지는데,

그중에서 추밀원부사공파, 복야공파,

그리고 인가파와 좌윤공파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추밀원부사공파의 인물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을 꼽을 수 있구요,

복야공파는 복야공 권수홍(權守洪)의 후손들이고

부정공파는 고려시대의 부정공(副正公) 권통의(權通義)의 후손이죠

 

인가파에서는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권함이 있구요,

송시열의 제자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심인물이었던 권상하(權尙夏)가 있죠

좌윤공파는 좌윤공 권지정(權至正)의 후손으로 고려시대에 호장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권세위(權世位)가 정용별장(精勇別將)을 지냈구요

권세위의 제6대손 권진(權軫)은 형조와 이조판서를 지내고,

세종 때 좌의정에 이르렀답니다.

 

이렇게 고려, 조선시대 주요 문벌 중의 하나인 안동권씨에서는

조선시대 증직(贈職)된 사람을 포함하여 상신이 40명, 경신이 116명,

초시 이상이 1085명, 봉군이 70명, 호당이 6명이고

시호를 받은 인물이 59명, 공신 86명이나 되구요

 

또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는 모두 1398명인데, 그중 문과가 367명,

무과가 99명, 사마시가 913명, 역과가 9명, 의과가 4명,

음양과가 1명, 율과가 5명이랍니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권수평은 고려시대에는

추밀원부사를 지내고 청빈한 관리의 표상이었고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대학자로 유명한 권근(權近)은

이색과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고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죠

또, 권율(權慄)은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고, 육지엔 권율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고요

 

광주 목사로 있으면서 금산군 이산사, 수원 독왕산성에서 적을 대파하고,

행주산성에서 적의 3만 대군을 격파하는 행주대첩을 치뤘는데,

그 공으로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후 정유재란에서도 수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그럼 근현대 인물로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요

안동권씨 근현대 인물로는 삼대에 걸쳐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한 권인규, 권종해, 권기수의 집안이 유명하구요.

그리고 초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철학자 권상로가 있죠.

그는 ‘팔만대장경’을 번역했고 ‘한국지명연혁고’와 같은 대작을 남겼습니다.

또 문학박사로 한국 최초의 영한사전을 펴낸

전 서울대 총장 권중휘(문학박사)씨도 유명하구요,

그 외에도 권영해(전 안기부장), 권정달(전 민정당 사무총장), 권오을,

권영세, 권영길, 권선택(전 또는 현 국회의원), 배우 권상우와

가수 보아(권보아)등이 있습니다

 

다음 안동권씨의 세거지입니다

안동권씨 세거지라 하면 대부분이 안동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요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이 이곳에 안동권씨의 장지를 정한 이래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분당구 금곡동 쇳골[금곡(金谷)]은 참의공파 권선한(權善漢)[1942년생]의

13대조인 권득기가 처음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하여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권득기는 산장 등을 사이에 두고 있는 궁내동 귀성군

이첨(李瞻)의 사위가 된 연유로 쇠골에 배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귀성군은 외손 권심이 봉제사를 하였는데 권심은 권득기의 3남이랍니다.

금곡동 일대의 권씨네 땅은 원래 궁내동 전주이씨의 사패지였는데

권씨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열한번째로 인구가 많다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역대 주요인물, 세거지등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에는 12번째로 많은 인동장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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