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절 및 상식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청하인 2024. 9. 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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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이제 며칠후면 추석인데요.

이 채널을 구독하시는 모든 구독자님도 추석 잘 보내시고

고향길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기원하면서 오늘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이름을 말할 때 홍길동, 김개똥이라며 성과 이름을 말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이 성이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 성씨(姓氏)탄생의 비화(秘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씨는 사람의 혈족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를 의미하구요.

핏줄이 같은 사람들은 같은 성씨를 갖는 것이죠.

 

성씨를 나타낸다는 姓자는 女자와 生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한자이죠.

이는 여성이 생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이 성씨는 원래 어머니의 핏줄을 뜻했던

'姓(성)'이라는 말과 자신의 조상이나 출신 지역을 뜻했던 '氏(씨)'가 합쳐진 말이에요.

 

우리의 선조들은 씨족사회에서 혈연을 증심으로 모여 살아왔다고 합니다.

원시 시대에는 남자의 역할은 먹는 것을 구하는 사냥을 주로 했구요.

반대로 여성은 2세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을 담당했죠.

 

이처럼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모계 사회를 이루고 살았고,

이후 부계사회로 변천을 했다는 건 아마 학교다닐적에 다 배웠죠.

백호통에서는 사람이 성씨를 갖는 이유를 사랑과 은혜였구요.

또 존숭 및 친지와의 돈독하게 하고 금수와 달리 서로 혼인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는데

이는 인맥을 변별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씨(氏)가 있는 이유로는 공덕을 중시하고 재주를 전사하기 위함이었구요.

또, 혹은 관직으로 氏를 삼고 또한 사업으로 氏를 삼는다고 했데요.

 

그러므로 이를 얻으면 덕을 엇을 수 있어 깨달음이 있게 되므로

사람으로서 善을 힘써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그리고 또 성은 4가지로 나누는데요 바로 천강성, 토성, 사성, 래성등인데요

천강성은 신라시대의 박혁거세와 고구려의 주몽, 가락국의 수로왕이

천(天)에서 내렸다는 특별한 의미로 왕을 신성하게 여기는데서 유래된 것이구요.

​토성은 정, 최, 손, 이, 배 등 토착민들의 성씨이고

​사성은 왕이 직접 하사한 성씨입니다

또, 래성(來姓)은 중국 일본 베트남등의 외국에서 한국에 귀화하여 이루어진 성씨입니다

결국 부자들은 거의 모두다 좋은 이름을 쓰고 있는 실정이죠

 

아무튼, 한국의 성씨(姓氏)는 한국인이 혈족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물론 한자를 발전시킨 중국의 성씨 체계를 바탕으로 도입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유의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한국의 성씨는 대체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는데요.

첫 번째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고대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한국의 성씨로 정착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성씨들은 대개 중국의 성씨와 형태가 같으며,

특히 귀족이나 학자 계층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다음 두 번째는 한국 고유의 성씨로,

이는 한국의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생성된 성씨들입니다.

이 성씨들은 주로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하며,

특정 지명이나 자연적인 요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해 김씨, 전주 이씨, 안동 권씨 등은 모두 특정 지역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성씨들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어,

성씨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한국의 성씨는 극소수의 성씨를 제외하면,

한자 한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한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성씨는 처음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이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한국의 가문과 그들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국인이 귀화하는등 희귀성씨가 많아짐으로

그 숫자도 엄청 늘어나 수천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씨는 조선조 초기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죠,

유랑민이거나 원래의 천민들은 조선 말기까지 성(姓)이 없이

떡쇠, 돌쇠, 마당쇠, 개똥이, 삼돌이, 오월이 유월이, 향단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었는데요.

 

귀족은 삼국시대에 성씨를 정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평민은 조선 후기 족보 매매가 성행 하면서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네요.

 

그후 1909년에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하여

유랑민이나 노비들에게도 원하는 성씨를 주어 호적을 만들게 했는데요,

이때 인기가 있던 성씨가 金,李,朴,崔,鄭, 姜,趙,尹,張,林씨 등

지금의 10대 성씨였다고 할수 있죠.

 

그런 양반성씨를 천민들에게도 마음대로 쓰게 한 것은

양반씨족들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일제의 술책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성씨는 중국(유교)의 영향을 받아 모두 한자(漢字)로 쓰이구요,

부계(父系)혈통으로 본관과 성을 결합해 혈족의 계통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예-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등)

 

성씨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중국으로 추정된다고 앞에서 말했죠.

중국에서 처음 성을 쓴 사람은 중국 역사의 기원을 담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농씨예요.

 

신농씨는 '강(姜)'을 자신의 성으로 삼았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강수(姜水)라는 곳의 지명에서 성을 따왔다고 합니다.

신농씨와 더불어 중국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황제'란 인물은

그의 어머니가 희수(姬水)라는 곳에 살았기에 '희(姬)'라는 성을 가졌고요.

 

성(姓)이라는 한자에 여자 여(女) 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이렇게 성이 어머니의 핏줄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반면 씨(氏)는 남성들이 아버지의 핏줄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들이 새로 정착해 살게 된 지명이나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고대 중국이 농사를 짓고 정착해 살아가는 농경사회로 변하면서

남성의 역할이 점점 커지게 되자 아버지의 핏줄을 뜻하는 '씨'가 등장한 것이죠.

 

이후 성은 주로 혈통을, 씨는 출신 지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다

점차 성과 씨를 구분하지 않고 '성씨'로 합쳐 쓰기 시작한 거예요.

◈ 우리나라에 성씨가 처음 생긴 때는 언제일까요?

삼국시대의 역사를 다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69년 신라를 세운 혁거세가

박처럼 생긴 둥근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박(朴)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요,

 

유리왕은 초기 신라를 이루던 6개 촌의 촌장들에게 각각 이(李), 정(鄭), 최(崔),

손(孫), 배(裵), 설(薛)이라는 성을 내려주었다고 나와 있구요.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의 성은 고(高)씨고 이름이 주몽이라는 이야기와

백제 왕족의 성씨가 부여(扶餘)라는 이야기도 등장하죠.

 

하지만 사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성씨가 없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예요.

삼국시대에 성씨와 한자식 이름을 사용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는 진흥왕 때부터로 추정된답니다.

 

이때부터 각자의 성씨를 정한 왕족과 귀족이 생겨났고,

고려 때 쓰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 왕족 계보를 바탕으로

삼국시대 초기 인물들에게 한자식 성과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성씨가 늘어나게 된 중요한 계기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는 정책을 시행한 것과 조선 후기에 족보 매매가 늘어난 것이었어요.

 

지방 세력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세우고 왕이 된 왕건은 성씨가 없던 지방 세력가들에게

각자 다스릴 땅을 정해주고 성씨를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토성분정 정책이랍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성씨의 출신 지역을 뜻하는 '본관'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데요

가령 안동 권(權)씨는 안동에 세력을 차지한 권씨 사람을 뜻하는 것이죠.

 

역사 기록에 따르면 왕건은 당시 복주 지역을 지키던 김행이라는

세력가에게 권씨라는 성을 내려주고, 복주 지역의 이름을 안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왕건이 성씨를 내려주었지만 조선 중기 전까지 한반도에 사는 사람 중

성씨가 없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했어요.

대대로 천민은 성씨를 가질 수 없었고, 평민 중에도 성씨가 없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성씨를 가진 사람이 더 늘어나게 된 건 조선 후기에 천민이나 평민들이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양반들로부터 족보를 사들이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사들인 족보를 위조해 스스로의 핏줄을 양반으로 만들고,

동시에 그 성씨를 따르게 된 것이랍니다.

​지금처럼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게 된 때는 앞에서 말했듯이

조선 말기인 1909년 인구 수를 조사하고 신분을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호적 제도(민적법)가 시행된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일반 평민은 언제부터 성을 사용?

오늘은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우리가 지금까지 성씨를 사용하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몰랐는데

조금은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셨나요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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