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현 말씀, 구전어

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청하인 2023. 8. 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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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오늘은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공자말씀으로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여러분 자기의 삶은 자기가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지

타인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라면 아무리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일지라도 만족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공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죠

먼저 논어 헌문편 25장을 한번 볼까요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자왈,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한문으로 써봐도 특별히 어려운 한자는 없죠. 이 말을 해석하자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이런 의미랍니다

 

다른말로 해석해보자면 옛날 사람은 자기완성을 목표로 학문을 하였는데

요즘의 사람은 이름을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학습을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애초부터 이름을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간사할사자를 써서

사도(邪道)라고 했답니다. 참다운 학문이란 자기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겠죠

 

우리가 이상적인 인간상을 성인(聖人)이라 하거니와 성인의 수준을 목표로

자기를 수양해 가는 그런 공부야 말로 참다운 학문이라 할수 있을겁니다

 

그러므로 학문이란 것은 단순히 지식을 위해 지식을 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밖으로는 통찰력을 높이고 안으로는 자기를 수양하기 위한 학문을 말한답니다

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또 공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근사록에서는 “앞을 내다보고

기약하는 바를 멀리 또한 크게 할 지어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함에는 모름지기 능력을 헤아려서 천천히 하라.

뜻을 너무 크게 품어 심로해지고, 능력이 부족하면서

책임이 무거우면 필경 이를 망치리라”라고 했답니다

다음은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란 관점에서 알아볼까요

여러분!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다른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배움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죠

 

이건 과시나 인정받기 위한, 출세를 위한 도구일수도 있겠죠.

즉 타인을 위한 학습(성공이나 출세를 위한?)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허탈하고, 심지어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최근의 학습은 주로 이러했죠? 우수한 대학을 가는것도

자기가 자기적성에 맞는 대학을 가는것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위한, 자랑하기위한, 하나의 스팩을 쌓아 다른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대학도 선택을 하게 되는 일이 많죠.

 

도대체 언제까지 인정받아야 하나?

인정받고 나면 또 더 높은 단계의 인정자(認定者)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런 식이면 죽는 날까지 인정받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끝이 나겠죠.

왜냐구요? 인정은 끝도 한도 없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식이면 나는 내가 주인이 아니고 주인에게 끌려다니는 피동체가 된답니다.

아무리 성취를 이루어도 즐거울 수가 없답니다.

 

또 다른 과제가 자동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데요.

위인지학(爲人之學)의 바보 같은 삶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공자 철학입니다.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반해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자기를 위한 학문,

비교 대상은 오로지 나 자신이랍니다.

나를 위한 배움이란, 학습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성찰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당당한 삶을 위해서이죠

 

경쟁에서 벗어나면 그렇게 후련하고 편할 수가 없죠.

내가 그린 그림은 남 보기에 발전이 더디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의 기술과 나의 정신이 숨 쉬고 있는 작품이겠죠

 

물질과 안락을 조금만 양보하면 훨씬 큰 정신적 안식처와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 다 가지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욕심 덩어리 자체이니깐요

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선 도심 속의 안락한 환경과 여러 가지 편의를 버려야

전원의 맛과 향기를 만끽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위인지학은 과시와 인정에 대한 욕구,출세를 위한 도구로 하는 배움이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편협적이지만 반면에 위기지학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배움이 아니고 자아성숙과 성찰적 배움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개선하여 이웃과 함께 잘사는 공통체이익을 먼저 생각하구요

위기지학은 이타적이고 공존공생을 도모한답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다시말하면 배움,

즉 학문하는 목적은 자기를 깨우쳐서 자기터득을 구함에 있지,

다른사람들에게 자기학식을 과시하여 자기능력을 인정받는데

있지 않음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죠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는 것인데

부귀나 명예, 영화등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고 배움으로서 자기를 이룸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논어, 헌문편,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학습을 한다”

옛날 정자(程子)선생님은 옛날의 배움은 자기를 위했으나

마침내 남을 위하는데 이르렀고 지금의 배움은

마침내 자기를 상실하였다고 이뜻을 풀이하고 있답니다

각자가 모두 배움으로서 자기 인격을 완성해 나간다면

모든 사람이 다 좋은 결과에 도달하지만 각자가 자기의 인간됨을 고려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인정받기에만 급급한다면 결국 모든사람이

다 인성이 망가지는 불행사태가 도래할 것이겠죠

 

그러나 요즘 태세는 어떤가요?

공부하여 자기능력을 남보다 빠르게 배양하여 출세하는 것을 추구하고

부모님들도 그렇게 되어 누구집 자식이란걸 빛내주길 바라죠

오늘은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공자말씀으로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자왈,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이란 말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여러분은 이기적이며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주체적이며 이웃과 공생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요?

정답은 다 여러분이 판단하시구요.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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