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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청하인 2022. 5. 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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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우리가 사람이름을 말할 때 홍길동, 김개똥이라며 성과 이름을 말하게 되는데요

과연 이성이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 성씨(姓氏)탄생의 비화(秘話)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성씨는 사람의 혈족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를 의미하구요.

핏줄이 같은 사람들은 같은 성씨를 갖는 것이죠.

역사를 보면 성씨는 원래 어머니의 핏줄을 뜻했던 '()'이라는 말과

자신의 조상이나 출신 지역을 뜻했던 '()'가 합쳐진 말이에요.

 

우리나라 성씨는 조선조 초기까지만 해도

체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죠,

유랑민이거나 원래의 천민들은 조선 말기까지 성()이 없이

떡쇠, 돌쇠, 마당쇠, 개똥이, 삼돌이, 오월이 유월이, 향단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었는데요.

귀족은 삼국시대에 성씨를 정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평민은 조선 후기 족보 매매가 성행 하면서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네요.

 

그후 1909년에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하여

유랑민이나 노비들에게도 원하는 성씨를 주어 호적을 만들게 했는데,

이때 인기가 있던 성씨가 ,,,,, ,,,,씨 등

지금의 10대 성씨였다고 할수 있죠.

그런 양반성씨를 천민들에게도 마음대로 쓰게 한 것은

양반씨족들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일제의 술책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성씨는 중국(유교)의 영향을 받아 모두 한자(漢字)로 쓰이구요,

부계(父系)혈통으로 본관과 성을 결합해 혈족의 계통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등)

 

1985년 통계청 성씨별 인구조사로 그 통계를 알아볼수 있는데요

15년 마다 조사하는 이 통계는 2015년 조사당시

우리나라 성씨는 5,582개나 되는데요

5명이상인 성씨만도 500명이 훨씬넘었다고 합니다

그중 1위인 金氏는 전체인구의 21.5%10,689,9592-() 14.7% 7,306,828

3-() 8.4%4,192,074

4-() 2,333,927 5-() 2,151,879이구요,

6위부터 10위까지는 강(),(),(),(),()씨등이 차지하구요

인구 10만명이상인 성씨만 하더라도 100가지 정도 된다고 하죠.

여기에 본관별로 따져보면 가장많은 김씨는 김해김씨가 4,456,700,

경주김씨-1,800,853, 이씨는 전주이씨2,631,643, 경주이씨1,391,867,

박씨는 밀양박씨만-3,103,942명이구요

본관성씨가 같은 인구가 5,000명 이상인 본관성씨만 하더라도

500여종류가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귀화등으로 인해

새로운 본관성씨가 생겨난다고 하죠

 

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그럼 우리나라 족보의 특징은 어떠할까요

우리나라 족보의 특징은 조상들의 벼슬을 자랑하면서

그 몇 대 손()이라는 양반의 후손을 긍지로 살아가는 민족이다 보니

세계에서 양반이 제일 많은 국가라고 할수 있죠.

중국은 5.000여 성씨로 집계되는데, 전체인구 1,2,3위 비율이

우리나라는 김씨가 20%를 훨씬 넘는데 비해 중국은 7.4%, 7,2%, 6.8%

특정 성씨로 몰리는 기현상은 없으며, 0.1%130여 개의 성씨가

전체 8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중국 1위의 성씨는 李氏로 전체인구의 7.4%9600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730만여 명을 합하면 李氏

1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성씨라고 할수 있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성씨의 순위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1위인 김는 중국에서는 64,

한국의 2위인 이는 중국의 1, 한국의 3위인 박100, 4위 최씨가 58,

5위인 씨는 21, (6-50), (7- 8), (8-95).

(9-3), (10-17) 등으로 나타나 10대 성씨를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3.9%를 차지하고 있죠

 

두 글자의 성씨(복성)를 인구수대로 알아보면

남궁(南宮),황보(皇甫), 제갈(諸葛), 사공(司空), 선우(鮮于), 서문(西門),

독고(獨孤), 동방(東方), 장곡(),어금(魚金), 강절(岡田), 망절(網切) 12개인데요.

그리고 최근엔 소수성씨도 엄청 증가를 하는데요, 최근에 생긴 성씨 중에는

국제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수 있죠.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때(19C 후반)부터 전 국민이 성씨 가지기정책을 시행했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나 동네의 특징을 살려 성씨를 만들었다고 하죠.

그 예로 田中(전중-) 中村(중촌-마을), 松下(송하-소나무) 등으로

100여년의 역사에 그 숫자가 8만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이 가지는 성씨의 특징은 한국과 중국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양반을 흉내 내기 위해 특정의 성씨를 많이 선호했으나,

일본은 성씨의 평준화 즉 성씨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이 없었다고 할수 있답니다.

성씨로 인한 신분의 구별을 없애려고

각자의 뜻대로 성씨를 고르라 했던 것인데. 우리는 일본과는 반대현상이 일어났던 것이죠

우리나라가 일본을 싫어하지만 배울점도 있는 건 사실이라고 하죠.

 

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한반도에 성씨가 처음 생긴 때는?

성씨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중국으로 추정되는데요. 중국에서 처음 성을 쓴 사람은

중국 역사의 기원을 담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농씨예요.

신농씨는 '()'을 자신의 성으로 삼았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강수(姜水)라는 곳의 지명에서 성을 따왔어요.

신농씨와 더불어 중국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황제'란 인물은

그의 어머니가 희수(姬水)라는 곳에 살았기에 '()'라는 성을 가졌고요.

()이라는 한자에 여자 여() 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이렇게 성이 어머니의 핏줄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반면 씨()는 남성들이 아버지의 핏줄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들이 새로 정착해 살게 된 지명이나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고대 중국이 농사를 짓고 정착해 살아가는 농경사회로 변하면서

남성의 역할이 점점 커지게 되자 아버지의 핏줄을 뜻하는 ''가 등장한 것이죠.

이후 성은 주로 혈통을, 씨는 출신 지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다

점차 성과 씨를 구분하지 않고 '성씨'로 합쳐 쓰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 민족이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언제일까요?

삼국시대의 역사를 다룬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기원전 69년 신라를 세운 혁거세가

박처럼 생긴 둥근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박()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유리왕은 초기 신라를 이루던 6개 촌의 촌장들에게 각각

(), (), (), (), (), ()이라는 성을 내려주었다고 나와있어요.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의 성은 고()씨고 이름이 주몽이라는 이야기와

백제 왕족의 성씨가 부여(扶餘)라는 이야기도 등장하죠.

 

하지만 사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성씨가 없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예요.

삼국시대에 성씨와 한자식 이름을 사용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는 진흥왕 때부터로 추정된답니다.

이때부터 각자의 성씨를 정한 왕족과 귀족이 생겨났고,

고려 때 쓰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 왕족 계보를 바탕으로

삼국시대 초기 인물들에게 한자식 성과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성씨가 늘어나게 된 중요한 계기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는 정책을 시행한 것과

조선 후기에 족보 매매가 늘어난 것이었어요.

지방 세력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세우고 왕이 된 왕건은

성씨가 없던 지방 세력가들에게 각자 다스릴 땅을 정해주고

성씨를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토성분정 정책이랍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성씨의 출신 지역을 뜻하는

'본관'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데요

가령 안동 권()씨는 안동에 세력을 차지한 권씨 사람을 뜻하는 것이죠.

역사 기록에 따르면 왕건은 당시 복주 지역을 지키던 김행이라는 세력가에게

권씨라는 성을 내려주고, 복주 지역의 이름을 안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왕건이 성씨를 내려주었지만 조선 중기 전까지 한반도에 사는 사람 중

성씨가 없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했어요.

대대로 천민은 성씨를 가질 수 없었고, 평민 중에도 성씨가 없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성씨를 가진 사람이 더 늘어나게 된 건 조선 후기에 천민이나 평민들이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양반들로부터 족보를 사들이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사들인 족보를 위조해 스스로의 핏줄을 양반으로 만들고, 동시에 그 성씨를 따르게 된 것이랍니다.

 

김씨, 이씨, 박씨등 우리나라 성씨 탄생의 비화는?

지금처럼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게 된 때는 앞에서 말했듯이

조선 말기인 1909년 인구 수를 조사하고 신분을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호적 제도(민적법)가 시행된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우리가 지금까지 성씨를 사용하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몰랐는데

조금은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셨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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