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속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청하인 2022. 3. 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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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제 3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어 계절적으로는 완전한 봄이라고 하죠

가족과 함께 봄을 즐기며 야외에 나가 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해야 하지만

코로나19와 동해안에 내린 눈으로 인해 우리들 마음속의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죠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의미를 담은 성어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이런말 많이 들어보셨죠

어려운 한문은 없는 것 같죠. 바로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는 의미랍니다

어쩜 요즘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도 할수 있겠죠

 

어제는 강원도지역에 때늦은 폭설이 내려 교통을 마비시키고

코로나19확진자는 연일 수십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늘어나

시체를 보관하는 장례식장 부족되고 화장터에서 시체를

처리하지 못해 자꾸만 쌓여 간다고 하죠

 

정말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듯 합니다.

하기야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6.25와 같은 난리가 나 있는 곳이니까요..

이처럼 계절적으로 봄은 왔건만 피부로 느끼는 봄은 아직 요원한 듯 합니다

봄을 즐기기보다는 오늘 확진자가 몇 명이고

사망자가 몇 명인지 관심이 더 가는 세상이니 정말 안타깝죠.

봄향기 그윽하게 느껴야 하는데 이게 왠 말인가요

그러나 현실이니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겠죠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그럼 이러한 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어원,

즉 춘래불사춘의 유래에 대해 알아볼까요

 

중국 진(秦)에 이은 역대 두번째 통일왕조인 전한(前漢)은

통일 직후부터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북방민족인 흉노족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11대 황제는 원제(元帝· BC74~BC33)였죠

옛날에는 황제들이 다 주색을 밝혔듯이 원제 역시 색(色)을 밝혔는데요

장안(長安)의 미인이란 미인은 모두 궁으로 불러 들여 궁녀로 삼았답니다.

그렇게 들인 여인이 30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원제는 당연히 궁녀를 바꿔가며 밤을 보내게 되었겠죠.

매일 매일 궁녀를 고르는 것에 지친 그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연수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여인을 간택하기 위해서였죠.

 

그중에는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이름의 궁녀도 있었는데요

절세미인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많았겠죠.

후대인들이 왕소군(王昭君)을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등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소군은 다른 궁녀들과는 달리 이미 고령이 된 원제에게 별 뜻이 없었다네요.

다른 궁녀들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줘가며 잘 그려달라고 매달렸지만,

자존심강한 왕소군은 뇌물상납도 하지 않았답니다. 참 이상하죠.

그러니까 당연히 그림 속의 얼굴은 실물보다 예쁘지 않았고

오히려 실물보다도 훨씬 더 못하게 그려졌겠죠.

 

그런데 문제는 전한을 항상 괴롭히는 흉노족 때문에 나라가 평화로울때가 없었죠

때문에, 전한은 흉노족에 대해 때로는 무력으로 진압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친책을

쓰기도 했는데, 전쟁보다는 화친책을 사용하는 빈도가 더 많았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 날 북방의 흉노족 족장이 원제를 만나

한족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네요.

이 때 한나라는 국력이 약하여 흉노족과 화친정책을 펼치던 때였으니깐요.

당시만 해도 이렇게 결혼을 맺어 화친정책을 많이 폈던 시기이죠

 

화진책의 하나로 흉노족을 잘 보듬어야 했던 원제 역시

흉노의 호한야(呼韓邪)에게 여인을 주어 화친을 맺기로 했는데요.

색을 밝히는 원제는 그래도 이쁜 궁녀를 주기에는 아까워

그중 가장 못생긴 궁녀를 그에게 보내기로 했다네요.

 

그리하여 모연수가 그린 궁녀의 초상화를 보고 가장 못생긴 궁녀를 골랐는데.

그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

원제는 깜짝 놀랐다는데 그녀는 그림과는 달리 절세미인이었기 때문이랍니다.

 

결국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린 모연수의 목을 잘랐버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노와의 약속은 지켜야 했으므로 왕소군은 눈물로 떠나게 되었답니다

 

흉노 땅으로 떠나는 길에 그녀는 비통한 마음을 비파로 연주했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었답니다. 이 연주 소리에 날아가던 한 무리 기러기떼가

날개짓을 멈추고 떨어졌다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낙안(落雁)’이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의 아내가 된 왕소군은 호한야선우 사망 후에는 흉노족

혼인관습에 따라 그의 아들인 선우의 부인이 되었습니다.(우째 이런 일이~~)

이국땅으로 건너간 왕소군은 흉노족들에게 옷짜는 기술과 농업기술 등을 전래

했고 많은 흉노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왕소군이 흉노족으로 온 이후 약 60여 년간에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거의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게 바로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東方虯)가 쓴 ‘왕소군의 원한(昭君怨)’이라는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였다고 하죠.

 

이 시구절을 한번 보면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봄이 왔으되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몸이 약해진 때문만은 아니리니)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나와있죠

꽃과 풀이 없는 흉노 땅의 봄은 고향땅의 봄과는 달라

더욱 고향이 그리웠을 그녀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어

그리움의 인용구로 많이 쓰였답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말 그대로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이지만

근래에는 3월의 꽃샘추위 같은 날씨를 비유하여도 자주 쓰이지만,

시기는 좋은데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을 때를 비유하여 자주 인용되는 고사성어입니다.

 

또한 다른 일반 사람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말로도 주로 쓰이는 말이죠.

그래서 1980년 신군부 등장 때 JP가 읊어 더 유명해진 글귀이기도 하답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왔는데 봄같지 않다!

오늘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호시탐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뿐만아니라 봄을 위협하고 있는

그 놈의 코로나19도 하루 빨리 종식되길 기대해봐야죠

환절기 감기조심 하시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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