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는? 왜 최씨가 앉은자리는 풀이 안난다고?
여러분! 요즘 야당이나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대통령을 보고
황소고집이니 하면서 고집이 세다고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과연 윤씨가 고집이 셀까요.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나라 성씨중에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성씨와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성씨중에 고집이 센 성씨라고 하면
대부분 안(安)씨, 강(姜)씨, 최(崔)씨를 언급합니다.
거기에 황소고집 황(黃)씨도 한몫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윤(尹)씨가 고집이 세다고 전해오는 말은 없더라구요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성(姓)씨가 정말 고집이 셀까요?
또 앞에서 말한성씨중에는 과연 누가 더 고집이 셀까요

물론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일종의 민담 혹은 전설에 가까운 것으로
엄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살아 있는 김(金)씨 3명이 죽은 최(崔)씨 1명을 못 이기고,
최(崔)씨 셋이 모여도 강(姜)씨 1명을 못 당하며, 강(姜) 씨 셋이 모여도
안(安)씨 앉은 자리를 넘보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거기에 또, 황소고집 황(黃) 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고집이 셌을까요?

여기서 황소고집 또는 고집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그렇다면 고집이란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지 네이버에서 한번 알아볼까요
"고집(固執)"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라고 정의 하고 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는? 왜 최씨가 앉은자리는 풀이 안난다고?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고집이 센 성씨의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몇가지 설이 있는데요
그 첫째가 역사적인 배경 인물을 바탕으로 한 설인데,
고집센 가문을 들 때 흔히 안강최(安姜崔)라고 합니다.

그럼 먼저, 안씨(安氏)에 대해 알아볼까요
안씨라면 당연히 안중근(安重根)의사가 나오고부터의 이야기라 할수 있겠죠.
안중근 의사의 굳은 의지와 애국심은 일본인들 조차도 감동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로부터 안씨의 고집세다는 얘기가 유래되었다는 설입니다.
또, 安씨가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는 조선 태종 때 단종을 끝까지 추종하다 학살되고
최고의 명문가에서 천민으로 전락되었던
순흥 안(安)씨의 멸문지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낙인이 찍혀 크게 활약한 인물이 별로 없지만,
안중근의사를 포함한 독립운동가 중 안 씨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안 씨의 고집이 독립운동에서도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세다고 하기는 뭣하지만, 역사적 순서상 최씨, 강씨, 안씨가 차례로 나오면서
최씨 고집보다 강씨가 더하다 그랬다가...
안중근 의사가 나온뒤로는 안씨가 더하다는 식으로 얘기되었다는데요.
또, 이를 거꾸로 하여 안강최라 불리워 졌다는 설이 있죠

다음 두 번째로 강씨(姜氏)인데요
강씨(姜氏)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말부터 세종때까지 살았던
강회중(姜淮仲)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강회중은 고려의 유신으로 정몽주나 이숭인, 길재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시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는데요
조선을 개국한 태조와 태종, 세종때까지 여러 벼슬을 내려서 회유했지만
끝내 물리치고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에서 그의 마음과 기개가 사람들에게
강씨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강씨 고집도 알아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강씨 고집은 남자보다 여자가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다음 마지막으로 최씨(崔氏)인데요
처음 최씨(崔氏)는 고려말 최영(崔瑩)장군의 일화인데요. 이성계에게 몰려나 죽고 나서
무덤에 풀도 나지 않았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데, 고려에 충성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최(崔)씨 고집은 고려 말의 충신 최영 장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죠.
그래서 최영 장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죽어 가면서,
"내가 역적이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옳다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후일 지독한 사람을 빗대 놓고 하는 말로
'최 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회자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부터 최씨하면 의지가 굳세고 지조있다는 것으로 얘기했는데 ...
나중에는 고집세다는 것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는? 왜 최씨가 앉은자리는 풀이 안난다고?
다음 두번째 설은 글자를 두고 대체적으로 산 짐승들 중에
뿔이 달린놈들이 고집이 센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뿔다구가 많은 놈들이 고집이 쎄다고하였다네요
최씨/뿔이 셋(崔)
강씨/뿔이 둘(姜)
안씨/뿔이 하나(安)
이처럼 뿔따구가 많은 순으로하여, 최씨고집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강씨이고,
그 다음이 안씨 고집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뿔이 많은 순으로 고집이 쎄다는 설이 두 번째 설이죠
그리고 마지막 설은 최씨하고 강씨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성을 정할 때
아비는 최씨를 고집하여 최씨로 하자하고 어미는 강씨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고집했는데
그 아이는 죽어도 최씨는 안쓰고 강씨도 안쓴다고 부모에게 반기를 들었고
자신은 안씨로 할꺼라고 우기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최씨인 아버님과 강씨인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까지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가
끝내는 안씨를 고집하여 안씨가 되었다고 하여 안씨가 최고라는 고집설이 있습니다
어쨌던 위의 3가지 고집 설은 사변 이전까지는 인정해 주는 고집쟁이 가문이었으나
시절이 바뀌니 고집쟁이들도 바뀌게 되었는데요
6.25 동란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는 신흥 고집쟁이가 출몰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고집쟁이들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성씨가 있었으니 그 고집은 명불허전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고집쟁이 가문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그 가문은 뿔이 하나가 달리었는데요

그 뿔이 보통 뿔이 아니고 통뿔이 달린 성씨였습니다.
생긴 것부터 이미 고집스럽기 짝이 없었다는데 무슨 성씨였을까요?
머리끝서부터 저 아래 발바닥까지 온통 전체가 다 뿔로 된 놈이었는데요.
그 고집이 안강최는 유도 아니었고 그들 셋을 다 합친거보다 더 해
천하의 내노라하는 고집쟁이 가문들조차 전부 내다 앉아야 했다네요
그나마 평소에는 그 고집을 잘 안내놓는데 한번 내 놓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그 가문에서 고집을 시작하면 내리막길을 달리던
차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는 경우였습니다

이건 완전히 내지 넘은 나사처럼 세상이 끝날 때 까지
제 갈 길로 가는데 누가 그걸 말릴 수 있겠습니까....바로 차씨 가문입니다
그 이름도 거룩한 통뿔고집 차씨고집(車). 그중에서도 브레이크 고장난 車씨 고집이죠
물론 이건 설이고요 이때 차씨는 가상의 성씨일수도 있습니다
이들 ‘안(安), 강(姜), 최(崔)’와 고집과 견주어 절대로 밀리지 않는 성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황소고집이라고 알려진 황 씨 고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는? 왜 최씨가 앉은자리는 풀이 안난다고?
얼마나 고집이 대단하길래 그렇게 불렸는지 황씨 고집의 내력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영조 때 집암 황순승(1652 -1718) 선생 때문에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마을 앞개울에 다리를 새로 세웠는데 다리 위를 덮은 흙에
하얀 석회가루가 섞어져 있자 인부를 불러 어디서 가져온 흙이냐고 묻자
“오래된 무덤 부근에서 흙을 가져왔다"라고 했데요,
남의 무덤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평생 다리 위로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날 그가 한양에 다니러 갔다가 평양으로 되돌아가려던 순간
우연히 친구를 만나 다른 친구의 부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데 지금 입고 있는 의관 그대로 조문을 가는 것은
‘죽은 벗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후 1주일이나 걸리는 평양으로 가서
의복을 다시 정제한 후 조문을 갔다고 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좋은 논을 조상 제사에 사용할 쌀을 생산하는 용도로만 정해 놓고
그 논에는 절대로 퇴비를 쓰지 않고 쌀 뜨물로만 거름을 주며 정결하게 농사를 지었는데요
어느 날 하인이 그 논에서 방귀를 뀌는 것을 보고 그 논에 물을 빼고
새 물을 대기를 3년을 하고서야 비로소 새로 농사를 지어 제사를 모셨다고 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당숙과 함께 성묘를 갔는데 묘가 있는 산까지 얼추 20리(8km)쯤 떨어진 곳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걸어서 갔답니다
그래서 당숙이, “왜 그러느냐?"라고 묻자
“조상의 묘가 있는 산이 보이는데 어찌 말을 타고 가겠습니까.” 라고 하였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황고집이라고 불릴만하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는? 왜 최씨가 앉은자리는 풀이 안난다고?
어때요? 오늘은 우리나라 성씨중에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성씨와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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