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절 및 상식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전말과 진실은?

청하인 2022. 8. 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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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전말과 진실은?

내일이 8월 18일이죠. 여러분 혹시 76.8.18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세요

지금은 기억속으로 사라져가지만 바로 8.18 판문점 도끼 살인이 일어난 날이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당시 만행 사건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전말과 진실은?

여러분 요즘 남북관계가 극도로 좋지않죠. 핵실험은 김정은이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실험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었고 남북관계는 타협을 모르고 적대적으로 변모하고 있죠

문재인 정부 5년동안 북한을 그렇게도 영웅시하고 대접해줬건만

돌아온건 소대가리란 말뿐인지 정말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럼 이 8.18사건의 전말을 한번 알아볼까요

 

먼저 당시 대한늬우스를 잠깐 한번 보고 시작할까요

 

 

잘 보셨나요. 이처럼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2차 한국전쟁이 발생할 뻔 한 사건이죠

 

군대생활을 GOP나 GP등에서 근무한사람은 알겠지만

한국과 북한은 휴전선기준으로 2Km의 비무장지대가 존재하죠.

그리고 그 안에서 판문점은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공동경비구역을 말한답니다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는 여러개의 UN군,북한군의 초소가 존재했는데

갑자기 북한이 5초소와 8초소를 건설하면서

UN군 3초소가 포위된 듯 고립된 형태가 되어 버린거죠.

언제 납치해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측 UN군은 3초소를 보호하기 위해

5초소를 설치하게 되었고 CP5는 항상 3초소의 안전을 체크하고 있었야겠죠.

 

이때 그 사이에 있는 미루나무 3그루가 또한 문제가 됩니다

해마다 쑥쑥자라더니 12m까지 자라게 된거죠

매년마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시야확보에 노력했지만

감당이 안될정도로 커져버린 것이 발단이었죠.

 

할수없이 UN군은 8월 6일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하는데

북한군이 강하게 이의제기를 하자 물러나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UN군은 어쩔수 없이 8월 18일 미루나무 가지만 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북측도 근처 나무의 가지치기를 해왔고,

이에 남측에서 한 번도 방해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스럽게도 미루나무 가지를 치기로 결정한 것이죠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노무자 3명,육군 장교3명, 경비병 7명이 동원되여

가지치기 작업을 실시 하는데요.

이 때 북한 육군 군관 2명과 병사 8명이 달려오며 항의 하는데

가지치기 작업을 한다고 설명하자 북한군도 수긍하며 지켜보았죠

그 후 47분에 북한군 박철 중위가 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는 시비를 걸었는데요.

자기들이 심은 나무이니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죠.

박철은 다혈질이고 성질이 더러워서 미친개라는 소리를 듣는 자였다고 하네요.

그후 북한군 20여 명이 더 온 상황이지만, 보니파스 대위는

박철의 욕지거리에 대응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는데요.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박철이 "전부 죽여!"라고 명령했고,

북한 병사들은 박철처럼 미친개가 되어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시작된 것이죠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했으며

심지어 가지치기에 사용하던 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서

살해까지 하는 지경에 르렀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에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를 맞고 쓰러졌고,

바레트 중위는 어디론가 추격당했구요.

김문환 대위 등 한국군도 여러 명의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격투를 벌였다네요

 

집단 구타를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총을 꺼내 들 수는 없었답니다.

사소한 충돌이 큰 전쟁으로 번질까 봐,

어떠한 경우라도 먼저 총을 쏘지 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겠죠.

한국군 병사들은 일단 도망치다가, 부상자들을 구출하여 다시 뛰어들었는데요

 

일단 더 많은 북한군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오지 못하도록 트럭으로 막았구요.

그리고 쓰러진 보니파스를 구해서 짚차에 태웠답니다.

그러나 그는 처참한 모습으로 후송되던 중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네요.

이 모든 것이 겨우 4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죠.

 

시간이 흘러 상황이 잠잠해지자 북한군도

자신들이 잘못한것을 알았는지 줄행랑을 치며 도망을 갔는데요.

이렇게 10여분간의 공격이 계속되는 동안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죠

몇 분 후, 남측의 신속 대응팀이 출동했는데요.

그러나 상황은 이미 종료되고 북한군도 다 돌아간 뒤였죠.

바레트 중위도 발견했으나, 너무 참혹하게 다쳐서

그 역시 후송 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보니파스 대위는 본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이었고,

바레트 중위는 부임한 지 겨우 한 달되 신참인데 말입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보니파스 대위, 바레트 중위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하자

당연히 미국과 한국은 분노했고 UN군 사령관과 박정희 대통령은

데프콘3단계를 발동 시키게 되었답니다

 

북한군도 이에 맞서 북풍 1호(준전시 체제)를 발동, 전군 완전 무장을 지시했다네요.

당시만 해도 데프콘 3가 발령된 것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아웅산 테러 사건,

단 두 번밖에 없던 위기였다고 하죠.

이때도 군사분계선 부근 한정으로 데프콘2가 선포되었죠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패배로 끝나 미국의 자존심이 바닥을 기던 상황이라

더욱 강경 하게 대처할것으로 보였던 시기였죠

실제로 미국은 육해공으로 전쟁 준비를 마친 후

항공 모함까지 출격 시켰다고 하니 나름 진지하게 전쟁을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면전으로 가기에는 미국도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부담이 있었고

만약 소련이 참전하게 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수도 있으니 사건 발단의 원인인

미루나무를 제거하며 북한군의 상황을 보기로 결정했죠

 

미국은 미루나무를 벌목하는 동안 북한군이 총알 한발이라도 도발한다면

대대적으로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고 했죠

​하지만 북한이 가만히 지켜보자 결국 미루나무를 자르는선에서

작전은 종결되게 된것이랍니다

 

북한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공산국가 동맹국인 중국과 소련도

북한의 미친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북한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이제 내일이면 이러한 8.18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지 46년째가 되네요

아직도 북한은 남북한의 원팀보다는 핵개발을 하고

전쟁만을 준비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네요.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안보는 양보가 없죠. 힘이 곧 평화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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