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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청하인 2023. 8. 1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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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우리나라의 본관성씨를 알아보는 시간, 오늘은 그 여덟번째 시간으로

광산김씨(光山金氏)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역대 주요인물,

본관지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광산김씨(光山金氏)는 경주최씨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많은 성씨로

2015년 통계조사 결과 926,316명으로 거의 100만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김씨로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김해김씨, 경주김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김씨이죠

 

먼저 光山金氏의 연원, 유래

光山金氏의 연원은 경주시림의 김알지(金閼智:大輔公)의

탄강설화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신라 제4대 탈해왕 9년(서기95) 3월에 王이 金城서쪽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호공(瓠公)을 보내 살피게 하였더니,

나뭇가지에 金빛 찬란한 작은 궤(櫃)가 걸려있고, 그 밑에서 닭이 울고 있었는데요.

 

호공이 돌아와 이 사실을 王에게 아뢰자, 王이 사람을 보내 그 금궤를 가져다 열어보니,

그 속에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외모가 매우 출중하였다네요.

 

 

王이 기뻐하며 이르되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준 것이 아니냐”하고 거두어 기르니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특출하니 이름하여 閼智(알지)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姓)을 金氏라 하였답니다.

 

또 始林(시림)을 고쳐 鷄林(계림)이라 하고 국호로 삼았죠.

알지가 후에 대보벼슬에 올랐고, 자손이 이어져 7世 김미추(金味鄒)가

신라왕조 11대 조공왕(助賁王)의 사위가 되어 왕통(王統)을 이어 갔는데요

 

제13대 미추왕으로 金氏王朝가 이때부터 시작되어 신라왕조 56왕 가운데

金氏가 38大王을 계승하여 신라의 宗姓(종성)이 되었답니다.

 

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光山金氏의 始祖 王子公 諱 興光은 태보공 신라김씨 알지계의 후손으로서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및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1747년간 정묘대보(丁卯大譜)에서는 “新羅王子 興光으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죠

 

1957년 발행한 光山金氏 한성대보에서는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제반 정황상 신무왕의 3자가

더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없어 명확히 근거하기 어려워 추가 고증이 필요하답니다.

 

고대 여러 정황이나 자료들을 검토해 볼 때,

신라말 헌강왕은 셋째 아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다른 기록에서 신무왕의 셋째 아들을 김흥광으로 기술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시조공을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할 것입니다.

 

​흥덕왕 사후에 아들이 없자 왕권다툼이 시작되었고,

이때 우징(祐徵:뒤의 신무왕)은 아버지 金均貞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희강왕이 된 재륭과 다투다 패하여 아버지 金均貞은 궁궐내에서 피살되었죠

 

그후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였다가,

장보고의 힘을 빌려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45대 신무왕의 이력을 볼 때,

‘광산현제영시서’의 글과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신무왕이 6개월 만에 죽고,

뒤를 이은 문성왕시대에도 친족 간의 왕권다툼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역시 신무왕 제3자설이 더 가능성이 높답니다.

 

 

이렇게 무진주에 자리 잡은 김흥광은 그의 아들 김식(金軾)이 각간에 오르고,

손자 김길(金吉)은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움으로써

광산부원군으로 책봉되기에 이르고요.

 

더욱이 고려초기 후손들이 대대로 8명의 평장사(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급 관리)가

배출됨으로써 '서일동'이 ‘평장동’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죠. 따라서

광산을 본으로 삼은 때는 광산부원군으로 책봉된 고려 초기 시점으로 판단됩니다.

 

 

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광산김씨는 조선시대 들어와서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문묘(文廟)에 종사된 '현인 18인' 중 김장생, 김집 부자를 배출하였고,

김집은 종묘(宗廟)에 배향되어 '국반(國班)'이라 불렸다고 하는데요.

 

또한, 김장생의 증손인 김만기와 김만중 형제는 현종과 숙종 대에 정치에 활약했으며,

특히 김만기의 딸은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가 되었고 그 후손들도 영조 대까지

노론의 핵심 인물로 자리한 명문가라 할 수 있답니다.

 

이밖에도 정승이 5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 대제학이 8명이 나왔고요.

또한 문과 갑과 장원 급제자 12명, 문과 급제자 263명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김장생(金長生)의 4대 조부 김극뉴의 묘는 '천마(天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는 말(馬) 명당으로 유명하구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 그녀의 삼촌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한 김필순, 그의 아들이자 김마리아의 사촌 동생인

중국 배우 김염도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항일영화 촬영만을 고집했죠.

 

현대에 와서 알려진 후손으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창업주,

김병조 코미디언, 김태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황식 국무총리,

김수환 추기경, 현빈(본명 김태평, 배우) 김성환(배우)등이 있답니다

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다음 광산김씨의 종파를 한번 볼까요

광산 김씨는 크게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광절공파' 5파로 분류 되어있는데요..

이외에도 중파, 소파,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양간공파, 낭장공파, 광절공파는

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 활약한 김의원을 조상으로 두고 있습니다.

 

또한 문정공파와 문숙공파까지 해서 오늘날 광산 김씨는 전부 고려조 때

제각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세가와 여요전쟁을 계기로 성장한

문벌귀족 가문으로 이름났던 인천 이씨와 청주 이씨의 피도 흐르는데요,

 

이는 김양감의 두 아들인 김의영과 김의원 모두 장화공 이자연의 장남인

이정의 딸들과 결혼했기 때문이구요.

이정의 부인은 왕가도의 딸이기 때문에 청주 이씨의 피도 흐른답니다.

 

 

대한민국 본관성씨(8)! 명문가문이라는 광산김씨(光山金氏)!

다음 본관지에 대해 알아볼까요

광산김씨의 본관지인 광산(光山)의 유래는 평장동에 연원하였으니,

이곳은 본래 백제의 武珍州인데 景德王16년(752)에 武州로 개칭하였고,

고려 太祖23년(1228)에 光州라하고, 그 후 海陽縣(해양현)이라 하였다가

또 고쳐서 羅州(나주)의 속현을 삼았다고 합니다.

 

高宗46년(1259)에 翼州事(익주사)로 승격하고

그 후 武珍州(무진주)로 승격하였다가 다시 낮추어 光山縣(광산현)으로 삼고,

忠宣王(충선왕)때 化平府를 삼고, 뒤에 翼陽郡(익양군)으로 고치고,

恭愍王11년(1362)에 武珍州로 고쳐서 牧使(목사)를 두었답니다.

 

그후 조선조 世宗12년(1430)에 武珍郡으로 강등하고 그 후 州로 복구하였으며,

成宗20년(1489)에 瑞石縣(서석현)으로 강등하였다가 燕山7년(1501)에

다시 光州로 개칭하여 목사(牧使)를 두고,

仁祖20년(1489)에 또 光山縣으로 강등하였습니다.

 

그후 숙종 27년(1701)에 현(縣)으로, 숙종33년(1707)에 光州로 복구하니,

일제(日帝)강점기부터 행정구역 개편으로 全南 潭陽郡 大田面 平章里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의 동명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본관성씨를 알아보는 시간,

그 여덟번째 시간으로 광산김씨 시조의 유래와 분파, 특징,

역대 주요인물, 본관지등에 대해 알아보았고요

다음에는 파평윤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이웃신청도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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