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여러분! 혹시 연세드신 어르신들로부터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운다」이런말 들어보셨나요
그렇다면 예전에는 왜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 여러분들도 어릴 적 어른들께서 들어보셨겠지만
저도 어릴적에는 시골에서 이런 말 몇 번이나 들어보았는데요.
특히 길가다가 넘어져서 운다던가
부모님께 때를 쓰면서 우는 모습을 보고서는 자주 하시는 말씀들이죠
바로 “사내자식은 평생 세 번만 우는 기다.” 이말인데요
이 말은 남자의 울음은 아무 때나 흘리는 감정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순간에만 허락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의 핵심은 남자는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감정을 책임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유교적 남성관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삼국 시대까지 이어진 이 사고방식은
남성에게 ‘가장의 책임’과 ‘공적인 역할’을 요구하던 사회 구조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이 말을 하면 “그게 말이 되느냐,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이해가 잘 안되죠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왜 옛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는지,
정말로 세 번만 울라는 뜻이었는지,
그리고 주자가례 같은 옛 예법에서는 울음을 어떻게 봤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1. “세 번만 운다”는 말의 진짜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분명히 하나 짚고 가야 합니다. 이 말은 횟수를 세는 말이 아닙니다.
옛사람들이 말한 ‘세 번’이란 말의 의미는
👉 아무 때나 울지 말라는 뜻이고
👉 울어야 할 때는 반드시 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사로운 일, 개인적인 서러움, 자존심 상한 일 이런 걸로 울지는 말고,
👉 사람으로서, 아들로서, 가장으로서 반드시 울어야 할 때만 울어라
이 말입니다.

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이건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바와같이 첫 번째는 바로 태어날 때,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날 때 우는 생명의 울음입니다.
물론 이때의 울음은 울기위해서 우는 울음은 아니고 하나의 태어났다는 생존신호의 울음이겠죠
옛날에는 아이가 태어나 울지 않으면 산파가 아이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울게 했습니다.
옛사람들은 “울음이 크면 기운이 강하다” “울지 않는 아이는 탈이 있다”
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 울음은 허락된 울음, 오히려 반가운 울음이었습니다.
이 첫 울음은 인간으로서의 시작이자,
남자로서 감당해야 할 삶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때의 울음은 살아 있다는 증거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왔다는 신고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울음은 참아야 할 울음이 아니라, 하늘이 허락한 울음이었습니다.

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3. 두 번째 울음 – 부모를 잃었을 때의 울음입니다.
어쩌면 두 번째 울음이 가장 중요한 울음입니다. 이건 효의 울음이라고 하죠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울음입니다. 바로 곡(哭)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통곡하지 않으면
“저 집 자식 잘못 키웠다”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유교 사회에서는 👉 울음이 효도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옛말이 있습니다. “부모상에 울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 한 것이다.”
그래서 평생 울음 없던 사람도 부모 상여 나갈 때는 무너졌습니다.
이건 약해서가 아니라 효를 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에도
부모상 앞에서는 반드시 울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습니다.

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그럼 4. 주자가례에서는 울음을 어떻게 보았을까
여기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유교는 울지 말라고 가르쳤다” 아닙니다.
주자가례는 울지 말라고 한 책이 아닙니다.
👉 울되, 예에 맞게 울라고 한 책입니다.
주자가례에는 언제 울어야 하는지 누구 앞에서 울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울어야 하는지 이게 다 나옵니다.
부모상에서는 울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일부러 과장해서 울거나 남들 보라고 울거나
슬픔도 없으면서 소리만 크게 내는 것
이런 건 예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5. 세 번째 울음 – 의리와 삶의 마지막 울음
세 번째 울음은 집안마다 표현이 조금 다릅니다.
어떤 데서는 나라 잃었을 때의 울음이라 하고
어떤 데서는 평생의 신념이 무너졌을 때라 하고
어떤 데서는 자기 죽음을 앞둔 울음이라고도 합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 나 하나 잘못돼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 의리와 책임 때문에 우는 울음이라는 겁니다.

사내는 왜 울음을 참아야만 했을까? 남자가 세번만 우는 이유?
6. 실제 사례 몇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사례 ① IMF 때 가장의 울음
IMF 외환위기 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 많았습니다.
그때도 집에서는 울지 않고 버티다가
부모 산소 앞에서 처음으로 우셨다는 분들 많습니다.
“자식들한테는 차마 못 울겠더라” 이 말,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이게 바로 사내 울음을 아무 데나 쓰지 않은 사례입니다.
사례 ② 장례식장에서의 울음
요즘 장례식장에서도 이런 장면 봅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큰아들이 상여 나갈 때 무너지는 모습.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 집 큰아들, 사람 됐다.” 이 말 속에는 울음에 대한 옛 기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례 ③ 군대·전쟁 세대의 울음
6·25 참전 용사들 중에는 전쟁 이야기는 웃으면서 하다가도
전우 이름만 나오면 말 못 잇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울음은 겁의 울음이 아니라 의리의 울음입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때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통곡한 선비들
병자호란 이후 치욕을 견디지 못해 눈물 흘린 대신들
충신이 임금을 잃고 곡을 하던 장면들 입니다
이 울음은
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시대를 짊어진 남자의 울음이었습니다.

7. 그럼 요즘 시대에도 이 말이 맞을까?
요즘은 남자도 울어야 한다. 감정 표현이 중요하다. 이런 말이 맞는 시대입니다.
하기야 요즘에는 방송에 미스트롯이나 미스터 트롯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남녀할것없이 우는 모습을 흔히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운다”는 말이 주는 핵심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 울음을 아끼라는 말이지, 감정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말은 남자를 돌처럼 만들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울음에도 책임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서의 울음은 존중받았고
의리 앞에서의 울음은 남았으며
사사로운 울음은 삼가야 했던 겁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어떤 울음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남자는 세 번운다는 말의 의미와 유래 실제사례까지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에는 더 재밌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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