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현 말씀, 구전어

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sandda 2026. 5. 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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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여러분, 어르신들로부터 이런 말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박씨는 말이야, 본관이 달라도 서로 결혼 안 한다.”

“김씨도 조심해야 하고, 허씨도 그렇다더라.”

예전에는 이런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혼사에서 아주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 본관이 달라도 서로 결혼을 꺼렸던 성씨들

✔ 실제로 그런 관습이 존재했던 역사적 사례

✔ 그리고 과연 이런 관습이 주자가례 같은 유교 예법에 근거가 있는지

✔ 마지막으로 성현 중의 성현, 공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봤는지

차분하게, 한 번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 동성동본 금혼, 다들 알고는 계시죠?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는 동성동본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아주 오래도록 이어져 왔습니다.

이건 단순한 집안 규칙이 아니라, ✔ 유교 예법 ✔ 족보 체계 ✔ 제사와 혈통 계승 등

이 모든 것과 연결된 사회적 규범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 본관이 달라도 👉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 혼인을 꺼렸던 성씨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씨입니다.

■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을 안 한다”

이 말, 왜 생겼을까요?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법도 아니고, 예법에 명문화된 규칙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아주 강한 관념,

다시 말해 ‘거의 규칙처럼 여겨졌던 관습’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박씨는 “모두가 한 뿌리”라는 인식때문입니다

박씨는 다른 성씨와 달리 시조가 매우 분명합니다.

바로 👉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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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족보 인식 속에서 밀양박씨, 반남박씨, 함양박씨, 고령박씨…

본관은 다 달라도 “결국은 다 박혁거세의 후손 아니냐” 이런 인식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래서 본관은 달라도 ✔ 같은 성 ✔ 같은 시조 ✔ 결국 같은 핏줄이라는 생각이 굳어졌고,

“그럼 동성동본이랑 뭐가 다르냐” 이런 인식으로 이어진 겁니다.

② 신라 왕성이라는 특수성때문입니다

박씨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성입니다.

신라 56명의 왕 가운데 박·김·석 씨가 번갈아 왕위를 이었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직접 왕을 배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옛 왕실의 후손이다”

이런 자부심과 함께 왕의 혈통끼리 혼인하는 건 예에 맞지 않는다는 금기 의식도 함께 작용했습니다.

 

자부심과 금기가 동시에 존재했던 셈이죠.

 

③ 유교 예법의 확대 해석때문인데요

유교 혼인 원칙의 핵심은 동성동본 금혼입니다.

그런데 박씨 문중에서는 이를 한 단계 더 넓혀서 “동성 자체가 이미 동족이다”

라고 해석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 법은 아니지만 ✔ 집안 규율로는 매우 엄격하게 ✔ 박씨 × 박씨 혼인을 꺼렸던 것이죠.

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 실제 사례도 있었을까요?

네, 분명히 있습니다.

✔ 사례 1. 조선 후기 향촌 사회 기록에 나타나 있는데요

향약과 문중 규약에 “박씨 집안에서는 박씨 사위를 들이지 않는다”

“본관을 불문하고 박씨와 혼인은 삼간다” 이런 문구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 사례 2. 반남박씨 족보 기록도 한번 보면

일부 족보에는 “동성 혼인을 극히 꺼려 타 성과 혼인함”이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 사례 3. 근대 초기까지 이어진 관습에도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박씨 × 박씨 혼인은 ✔ 집안 반대 ✔ 혼사 파기 ✔ 족보 미등재

같은 사례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법은 아니었지만, 사회적 압력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 박씨 말고도 그런 경우가 있었을까요?

있습니다.

① 김씨 ↔ 김씨 (특히 신라 김씨 계통)입니다

경주김씨, 김해김씨 등은 “멀리 갈라졌어도 왕실 혈통”이라는 동족 의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김씨끼리는 피하자” 는 관습도 있었습니다.

 

② 김씨 ↔ 허씨 ↔ 인천이씨 인데요. 아주 유명한 가락국 계통입니다.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의 → 왕비가 허황옥 → 허씨는 왕비의 친족

→ 인천이씨 일부는 외척 계통이라고 하죠

 

그래서 사실상 “한 가족”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혼인을 꺼리는 관습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③ 남양홍씨 ↔ 풍산홍씨도 안했다고 합니다

본관은 다르지만 중세 족보상 동조 인식이 강해 일부 문중에서 혼인을 기피했습니다.

 

④ 왕실 관련 성씨 간 혼인 회피했다는데요

조선왕실의 전주이씨와 안동김씨, 풍양조씨 같은 외척 가문은 정치적 이유로

특정 시기 혼인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사례도 있습니다.

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 그렇다면 주자가례에는 뭐라고 나올까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주자가례에 동성동본 금혼이 적혀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의외로 👉 주자가례 원문에는 ‘동성동본 금혼’이 조문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습니다.

 

주자가례는

✔ 혼례 절차 ✔ 예식 순서 ✔ 가정 내 예법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자가례가 구체적으로 “같은 성씨 금혼”을 조문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유교 전통과 예기 구조 속에서 동일 원칙을 포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예가 사회적·법적 관습으로 연결되면서

동성동본 금혼 관념이 실제 혼인 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 그럼 근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① 공자의 가르침, 『예기』편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를 맞을 때는 자기와 같은 성의 여자를 택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 혈통 보호 ✔ 가계 질서 ✔ 제사 계승을 위한 유교적 예의 기본 원칙입니다.

즉, 같은 성씨 간 결혼 금지는 유교적 예(禮)의 한 규범이었으며,

주자가례는 이를 혼례 절차의 전체적 문맥 속에서 다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 중국 전통 혼인 문화때문인데요

혼인은 “두 집안, 두 성씨의 결합”으로 보았고 동성 결합은 가계 질서를 흐린다고 여겼습니다.

이 전통이 조선 사회로 들어오면서 ✔ 관습 ✔ 법으로까지 굳어졌던 것입니다.

박씨는 본관만 달라도 결혼안한다, 金.李.許.洪씨도 일부는 그렇다..

■ 그래서 현대는 어떨까요?

✔ 대한민국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 조항은 2005년 완전 폐지되었습니다.

✔ 지금은 유전적 문제가 없다면 혼인은 자유입니다.

 

다만 일부 종중이나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박씨끼리는…”

이런 인식이 문화적 잔재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본관이 달라도 결혼을 꺼렸던 성씨들, 그 실제 사례,

그리고 주자가례와 공자의 가르침까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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