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談(야담), 성(性)

사랑방 野談(42). 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sandda 2025. 11. 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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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오늘의 이야기는 딸만 아홉을 낳은 사나이가,

아들 하나 바라는 마음에 북촌 무녀집을 찾아 갔는데요.

그리고 들판에서 야합으로 낳은 아이가 훗날 ‘공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볼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성인, 孔子(공자)의 출생 비화를 알고계시나요? 

결론은 단정한 유학자 이야기 같지만, 그 출발은 의외로 인간적이고,

뜨겁고, 또 애틋했음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 노나라가 진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성은 불길에 휩싸이고,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성문은 무너졌고 군사들은 퇴로조차 막힌 ‘독 안에 든 쥐’ 꼴이 됐지요.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납니다. 키는 여덟척이나 되었고 어깨는 태산 같았는데요.

바로 대부 공흘(孔紇)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무너진 문을 번쩍 들어올려 군사들을 탈출시켰고,

백성들은 그를 ‘노나라의 영웅’으로 떠받들었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공흘(孔紇)은 고대 중국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가문이 단순한 선비나 학자 가문이 아닌,

무인의 기개를 가진 가문임을 강조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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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흘은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가정에선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첫 부인 시씨와의 사이에서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땐 첫 딸은 부자 된다더라~하고 웃었지만,

둘째도 딸, 셋째도 딸, 넷째 다섯째도 딸, 이렇게 쭉 이어져 오더니 결국 딸만 아홉이었습니다

 

그 시대, 아들 하나가 가문을 잇는 법인데, 공흘의 인간적인 고뇌는

자식에 대한 집착, 그중에서도 ‘아들 하나’에 대한 갈망으로 드러납니다.

‘대가 끊긴다’는 두려움은 당시 개인의 불행을 넘어 가문 전체의 몰락으로 인식됐던 것입니다.

부인 시(施)씨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딸을 낳고도

아들을 보지 못하자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 후 첩을 얻어 겨우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말 말할수 없을정도로 기뻤지요.

 

하루에도 열두 번 아들의 바지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장군감이야, 장군!” 하며 껄껄 웃었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다섯 살이 되도록 걷지 못하는 장애를 앓자

절망한 공흘은 다시 술독에 빠져 삽니다.

 

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어느 날, 주막에서 술에 취해 울던 공흘에게 한 노인이 말합니다.

북촌 너머 무녀에게 딸 셋이 있는데, 혼기가 넘었건만 아직 시집을 못 갔다네. 한 번 가보게.”

무녀의 딸이면 어떤가? 지금은 반듯한 아들 하나가 필요했으니까요.

 

절망에 빠져 있던 공흘은 우연히 주막에서 노인의 말을 듣고,

북촌 무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무녀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잡고 앉자 첫째 딸이 찻잔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공흘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둘째 딸도 마찬가지였죠.

고개를 푹 숙인 공흘이 일어서려는데 셋째가 들어왔습니다.

첫째·둘째도 고개를 저었는데 가장 어린 셋째야 어련하랴생각했죠.

그런데 마주친 눈빛에 불꽃이 튀었습니다.

 

제 어미와 소곤거리더니 셋째가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공흘을 따라나서는게 아닌가요.

꽃 피고 새 지저귀는 춘삼월, 온 산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고

만화방창으로 벌·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들었습니다.

 

종달새는 남풍을 타고 하늘에서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강을 건널 때 공흘은 새색시를 등에 업었고요. 두 손으로 새색시 엉덩이를 떠받쳤습니다.

 

“너 이름이 뭐냐?” “안징재(顔徵在)라 하옵니다.” “몇 살이냐?” “열여섯살이옵니다.”

강을 건넌 잔디밭, 그 위에서 두 사람은 생명을 잉태하는 뜨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엉덩이를 받친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배꼽 아래에 피가 쏠렸습니다.

강을 건너자 둑 옆 새파란 잔디밭이 마치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았죠.

 

공흘이 안징재를 잔디밭에 내려놓고서는, 잔디밭에 눕히고 품에 안았습니다.

타고난 장골이라 환갑을 넘겼어도 아직도 뜨거운 피가 끓었습니다.

 

열여섯살 새색시 안징재도 첫날밤 화촉을 밝힌 금침 속은 아니었지만

늙은 새신랑의 포옹에 중천의 해를 바라보며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들판에서 야합(野合)을 치른 것이죠

 

잔디밭에 깔아놓았던 공흘 군복에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했구요.

공흘의 피가 또 쏠려 야합을 삼합이나 치르고서야 일어나

차림새를 추스르고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봄을 밟고 들판을 가로질렀습니다.

 

새 신부 안징재는 무녀의 딸에 나이도 어렸지만 얌전한 공흘의 처로 가정을 꾸려갔습니다.

안징재가 헛구역질을 하더니 배가 불러왔네요.

열달 만에 공흘은 그렇게도 바라던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공흘은 야합으로 얻은 아들 이름을 구(丘)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언덕처럼 우뚝 선 인물로 자라라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기도 합니다.

구는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영리했죠

 

구가 세살 때 아버지 공흘은 이승을 하직하고 열일곱살 때 어머니 안징재를 여의었습니다.

공구는 창고지기로, 가축 사육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 공구가 바로 훗날 대학자요, 사상가요, 결국 그는 유가(儒家)를 세우고

<논어(論語)>의 주인공, 유학의 아버지, ‘공자(孔子)’랍니다!

 

가난한 환경과 편모슬하의 교육은 오히려 공자가 스스로 인간다움을 체득하고,

도(道)를 설파하는 철학자가 되도록 만든 배경이 됩니다.

 

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공자는 후에 중국 전역을 돌며 72명의 왕을 만나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한 이상 정치를 설파했습니다.

 

그는 본래 대단한 귀족의 후손이 아니며,

그의 삶 자체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겪고 깨달은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공자가 혈통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덕이다라고 설파하게 된 근원은 어쩌면

그 아버지 공흘의 ‘반듯한 하나’에 대한 인간적인 바람과

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성현 공자(孔子)의 출생에 얽힌 미스테리??

공자의 출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입니다.

늙은 아버지의 간절함과 무녀 딸의 용기, 들판의 야합, 그리고 고된 성장.

이 모든 것이 모여 한 성인을 탄생시켰습니다.

 

결국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져 어지럽던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30여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하며 왕 72명을 만나 인(仁)과 덕(德)의 통치를 설파했습니다.

 

반듯한 하나를 원했던 공흘의 바람은 결국, 천하의 스승 하나로 이어진 것입니다.

어때요. 공자의 출생비밀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죠.

그러나 출생보다는 성장과정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랍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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