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 본관

대한민국 성씨(5.정씨), 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sandda 2025. 6. 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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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씨(5) 정(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요즘 날씨가 많이 춥죠. 우리나라 정치사정이 더 춥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채널에서는 우리나라 성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고 있는데요.

지난번 김씨, 이씨, 박씨. 최씨에 이어 빅5의 또 한성인 정씨,

이 정씨(鄭·丁·程氏)에 대해 그 기원과, 본관. 유래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정씨(鄭氏)는 우리나라 성씨 중 김씨·이씨·박씨·최씨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인구가 있는 성씨라는 건 아시죠

 

성씨별 인구조사는 통계청에서 15년마다 한번씩 하는데요.

지난 2015년 조사에서 정씨(鄭氏) 인구는 2,151,879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다섯번째로 많은 성씨이죠

 

대한민국 성씨(5) 정(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정씨(鄭氏)에는 같은 발음을 갖는 鄭·丁·程 등 3개의 성이 있죠.

그 중 丁씨와 程씨는 모두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이며, 鄭씨는 토착 성씨입니다.

물론 토착 성씨인 鄭씨에도 서산정씨와 당야정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입니다.

그 외 경주정씨를 비롯한 정(鄭)씨 대부분은 신라 건국에 기여한

6부 촌장 중의 하나인 진지촌(珍支村) 지백호(智伯虎)의 자손이라고 하죠.

 

정씨는 동래·영일·경주 등 138개 본관이 있고요(조선시대에는 247개 본관),

그 중 사람 수가 2000명 이상인 본관은 39개에 이르고,

한두 가구만으로 이뤄진 본관도 6~7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인구 기준으로 가장 큰 정씨 본관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총인구가 47만여명이 넘습니다. 그 다음이 경주정씨(慶州鄭氏:35만여명),

연일정씨(延日鄭氏:28만여명), 진주정씨(晉州鄭氏:20만여명),

하동정씨(河東鄭氏:19만여명) 순입니다

*단, 연일정씨는 통상 연일정씨+영일정씨+오천정씨를 같이 합쳐서 말하며

영일정씨(迎日鄭氏)-6.6만명). 오천정씨(烏川鄭氏)-4.4만명, 합치면 39만명

 

그 외에도 광주정씨(光州鄭氏), 나주정씨(羅州丁氏), 진주정씨, 해주정씨 등

40여본이 정씨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씨(5) 정(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그럼 정씨의 기원에 대해 알아볼까요

앞서 다른 성의 기원을 설명할 때 이미 말했듯이 정씨의 시조는

신라 6부족 중의 하나인 진지촌 지백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다르게 기술되어 있죠.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백호는 한무제 6년(기원전 117년)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취산 진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 건국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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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유리왕(2대) 9년 6부의 명칭을 개명하고

개국공신인 6부 촌장에게 성을 하사했는데,

진지부를 본피부(本彼部)로 정하고 정씨 성을 하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죠.

 

하지만, 이와 달리 삼국유사에는 ‘알천 양산촌의 촌장은 알평이며,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고,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는 사량부 정씨의 조상입니다

 

무산 대수촌의 촌장은 구례마로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라고 하고,

‘진지촌의 촌장은 지백호이며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라고 표기하고 있잖아요

즉, 소벌도리와 지백호에 대해 최씨와 정씨의 조상으로 엇갈려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삼국사기의 기술에 의거하여 소벌도리는 최씨의 시조로,

지백호는 정씨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어서 정씨의 본관별 대종회에서도

정씨의 원시조를 지백호로 기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정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하는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서

524년이 지난 29대 태종무열왕 3년에 ‘진지부 촌장 지백호를

감문왕에 추봉한다’는 기록이 있어, 과연 유리왕 9년에 6부 촌장에게

성씨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종무열왕 때 와서도 본피부로 바꾼 진지부를 계속 진지부로 호칭하고 있고,

정씨 성을 하사받은 지백호에 대해서 여전히 지백호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라 왕족이 김씨와 박씨 성을 쓴 것이 진흥왕 이후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6부족의 후예들이 자신의 성씨를 쓴 것은 그 이후가 아닌가 추정되는거죠

 

왜냐하면, 진흥왕순수비를 보아도 부족 이름과 촌장의 이름은 나오지만,

여전히 성씨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3개의 왕족과 6개 부족의 협의로 국가를 이끌어왔고,

또 각 부족이 그 조상에 뿌리의식과 숭배의식을 지녀왔다는 것을 추정할 때,

 

정씨 성을 쓴 것이 통일신라 이후라 하더라도 신라의 정씨 부족이

진지촌 지백호를 원뿌리로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죠.

 

이젠 정씨의 주요 본관별 연혁과 인물을 한번 알아볼까요

고려 태조 왕건은 각 지방의 유력 호족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쓰고, 토성을 부여했는데요

 

전국에 지적부를 만든 후 그 지역의 유력 호족에 지역과 성을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 ○○라는 본관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이죠.

정씨 문중의 종가에 해당하는 경주정씨의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경주지역에서 정씨 성을 쓰고 있는 유력 호족이었는데,

태조 왕건이 토성을 부여하여 경주정씨의 시조가 되었답니다.

 

그는 정씨의 원조인 지백호의 42세 손이 되구요.

고려 초기에 병부상서를 거쳐 평장사에 이르고, 이학(理學)과 문장에 밝았다고 전해집니다.

 

경주정씨는 원래 계림·월성 등을 본으로 쓰기도 했는데요.

지파로는 문헌공파(文獻公派)·양경공파(良景公派)·월성위공파(月城尉公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백호의 44세손인 정보기(鄭寶奇)가 위(偉)와 교(僑) 두 아들을 두었는데,

위의 아들 정현영(鄭玄英)이 문하시중을 지내고 문헌공이라는 시호를 받아

그 자손들이 문헌공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희계(鄭熙啓)가 양경공이라는 시호를 받아

양경공파를 이루게 되었구요

또 고려 때 부마였던 정이기가 월성공에 봉해져 월성위공파가 되었고,

평장사를 지낸 정필(鄭弼)의 자손이 평장공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부산진 전투에서 순국한

정발(鄭撥) 장군이 있는데요. 인구는 30여만명이나 된데요.

 

동래정씨의 시조는 안일호장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입니다.

뒤에 문안공(文安公) 정항(鄭沆)의 묘지에서 정지원(鄭之遠)까지 3세가 확인되어,

정지원을 기세조로 하고 있습니다.

 

정지원은 보윤호장을 지냈고, 그의 아들 정문도(鄭文道)는 안일호장을,

손자 정목(鄭穆)은 상서좌복야 태부경을 지냈구요.

그 후손들이 동래에 자리 잡고 살게 되면서 동래를 본관으로 정했죠.

 

동래정씨 기세조인 정지원의 아들 정문도 후손은 정씨문중 중에서

가장 번성한 본관이 동래정씨라고 합니다.

영일정씨는 지백호와 도시조 정종은(鄭鍾殷)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을 역임하고 영일현백으로 봉해졌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영일을 본관으로 정했는데요.

 

영일의 옛 지명이 연일로도 불려 연일정씨라고도 하고,

이들이 살고 있는 본 고장의 이름이 오천(烏川)이어서 오천정씨라고도 합니다.

 

​영일정씨에는 연원이 같으면서도 갈래가 다른 2파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고려 의종 때 추밀원지주사를 역임한 정습명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 감무를 역임한 정극유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선계가 실전되어 합보(合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주사공파에는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있으며,

감무공파에는 송강 정철(鄭撤)과 그의 아들로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정홍명(鄭弘溟), 정호(鄭澔) 형제가 있습니다.

 

진주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8개파가 존재하여

이를 진주8정(晉州八鄭)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이 주축을 이루는데요.

정예는 고려 초에 광록대부 문화시랑 평장사를 역임했고,

그 후손인 정시양(鄭時陽)은 금자광록대부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했죠.

 

정자우는 호장을 지냈고, 그의 6세손인 정신열(鄭臣烈)은

진양부원군에 봉해졌구요.

8세손인 정진경(鄭晉卿)은 좌우위보승중랑장을 역임했습니다.

 

정헌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를 역임했고 진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정장은 고려 말에 첨지중추원사를 지냈습니다.

 

진주정씨에는 문익점의 장인이면서 목화 재배에 큰 공적을 남긴

정천익(鄭天益)이 있으며, 세조와 성종 때 청백리와 명필로 유명했던

정척(鄭陟), 임진왜란 때 명장인 정기룡(鄭起龍) 등이 있습니다.

하동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3파가 있죠.

 

신라 말에 하동호장을 지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는

밀직공 국룡파, 상서예부 지부사를 지낸 정손위(鄭遜位)를 시조로 하는 지부사공 손위파,

금자광록대부 도첨의좌정승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는 정승공 응파가 있습니다.

 

하동정씨의 주요 인물로는 고려 충열왕 때 첨의 찬성사를 지낸 정지연(鄭芝衍),

세종 때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鄭麟趾),

성종 때 성리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정여창(鄭汝昌),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녹도만호 정운(鄭運)이 있죠

현대에 들어와서는 현대라는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회장도 하동정씨 문중이랍니다.

 

대한민국 성씨(5) 정(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다음은 정씨(鄭氏) 외 정씨, 정(丁)씨·정(程)씨인데요 

먼저 압해정씨(押海丁氏)입니다

정씨(丁氏)는 본래 중국 당나라 사람인 정덕성(丁德盛)이

신라 말(문성왕 15년, 853년)에 전남 신안군 압해도(押海島)에 유배되어

정착하면서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네요.

중국 쪽에서는 당나라 이전에도 정(丁)씨가 존재했으며,

후연의 4대 황제였던 모용희를 옹립할 때 정(丁)씨가 등장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정덕성이 당나라에서 승상을 역임하다,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한반도 남해안으로 귀양을 왔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의문은 다름 아닌 정약용(丁若鏞)이 압해정씨를 연구하며 제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丁)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에는 70여본(本)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동원분파이므로 현재는 압해정씨로 합본하고 있는데요.

크게는 나주·영광·창원·의성 4파로 분류하고 있죠.

 

그 중 나주정(丁)씨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했는데요.

정(丁)씨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실학의 대가 다산(茶山) 정약용을 들 수 있죠.

 

정(丁)씨는 현대에 들어와 많은 인물이 나오고 있는데요.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일권씨, 3공에서 국방부 장관,

5공에서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래혁씨 등이 압해정씨라고 합니다.

다음 하남정씨(河南程氏)입니다

하남(河南)은 경기도 하남이 아니라, 중국 화북(華北)지역의 남부를 일컫는 말입니다

 

북쪽은 하북(河北), 북동쪽은 산동(山東), 동쪽은 안휘(安徽), 남서쪽은 호북(湖北),

서쪽은 섬서(陝西), 북쪽은 산서(山西)와 접하고 있죠

 

예로부터 이 지역은 북에 황하, 남에 회하(淮河)가 흘러

수륙 교통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중원(中原)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정씨(程氏)의 시조는 정우(程羽)인데요. 그는 중국 후진(後晉)의 진사가 되었으며

송나라 태종 때 태자소사(太子少師)를 지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씨의 시조는 그의 18세손인 정사조(程思祖)인데요.

그는 고려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입국할 때,

20여명과 함께 배종하여 고려에 들어왔습니다.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냈고, 공민왕 때 한산군에 봉해졌죠.

이에 후손이 정우를 시조로 정사조를 동래시조로 삼고 하남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씨(5) 정(鄭,丁,程)씨의 기원과 유래, 본관은?

오늘은 우리나라 성 빅5중에 다섯 번째인 정씨의 유래와 기원,

본관등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지금까지 잘 몰랐던 분들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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