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 본관

대한민국 성씨(3.박씨), 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sandda 2025. 5. 2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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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얼마전에 이 채널에서 우리나라 성씨중 가장많다는 김씨와 이씨에 대해

그 기원, 본관. 유래등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그 세 번째로 시간으로 인구가 세 번째로 많고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성씨, 박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3대 성씨는 김씨·이씨·박씨라고 하잖아요.

이들 세 성씨는 약간씩 다른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김씨가 가야계의 김수로왕 계통과 신라계 김씨로 나뉜다면,

이씨는 한두 계통이 아닌 아주 다양한 시조를 받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단일 시조를 받들고 있죠.

모든 박씨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성씨는 본관만 다르면 결혼을 하지만 아직도 박씨끼리는

비록 본관이 다르더라도 가능하면 혼인하지 않으려는 관습이 있습니다.

 

조금전에 첫머리에서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우리나라에만 있는 성씨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김씨나 이씨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박씨만은 우리나라만 있답니다.

물론 중국에 비슷한 음을 갖고 있는 번씨나 판씨가 존재하긴 하나,

박(朴)이라고 쓰는 성씨는 존재하지 않아요

 

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성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씨라고도 할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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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이렇게 박씨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성씨이죠.

우리나라에서 성씨별로 인구조사는 15년마다 하는데요.

가장최근 2015년에 하였고 다음조사는 2030년에 조사합니다

2015년에 조사한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도 박(朴)씨성의 인구가

우리나라 5천만 인구중에 4,192,074명으로 8%내외 해당하는 수치로

전체 세 번째로 많은 성씨랍니다

그리고 본관별로 간단하게 살펴보면 박씨중 흔히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의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전체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밀양박씨이외에 반남(潘南)박씨, 죽산(竹山), 함양(咸陽), 순천(順天), 고령(高靈),

무안(務安), 충주(忠州)박씨가 주류를 차지해 이를 ‘8박’이라고 부르고 있죠.

 

또, 박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 ‘증보문헌비고’, ‘박씨선원대보’ 등에

300본 이상이 기록되고 있으나 그중 시조가 분명하게 밝혀지고

후손이 현존하는 본관은 70여 본 이래요

앞에서 말한 8박 이외에도 박씨의 주요 본관은 상주(尙州), 창원(昌原),

음성(陰城), 영해(寧海), 영암(靈巖), 진원(珍原), 고성(固城), 울산(蔚山),

운봉(雲峰), 춘천(春川), 비안(比安), 강릉(江陵), 월성(月城), 태인(泰仁),

면천(沔川), 삼척(三陟), 문의(文義), 장성(長城) 등이랍니다.

그리고 또. 신라는 박(朴)·석(昔)·김(金)에 의해 왕위가 교체되었는데요,

그중 박씨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비롯해 모두 10명이죠

박씨는 신라 초기에 7명이 왕위에 올랐으며,

신라 말기 신덕왕과 경명왕, 경애왕 등 3명이 왕위에 올랐잖아요

 

박씨는 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婆娑王)과 일성왕(逸聖王) 대(代)에서 갈라졌는데요.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면천·강릉 등으로 분적(貫籍)했고,

비안·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박씨 등도 파사왕의 후손이라 합니다.

그리고 일성왕계는 그의 25대손인 경명왕(景明王), 경애왕(景哀王) 대에서 갈라졌죠.

경명왕은 아들로 9형제를 두었는데요,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밀양박씨),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고령박씨),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함양, 삼척박씨 등),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죽산, 음성, 고성박씨),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상주, 충주박씨),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전주, 무안박씨),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순천, 춘천박씨 등),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경주박씨)의 8대군파와 국상공파(國相公派·울산박씨)로 분파되었죠.

그 외 경애왕 후손은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그럼 박씨의 유래와 기원에 대해 알아볼까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박씨들은 박혁거세를 유일 시조로 받들고 있죠.

따라서 박씨의 유래와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박혁거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답니다.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 또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실려 있는데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소벌도리공이 정씨의 시조인가,

최씨의 시조인가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그 내용도 한번 알아볼까요

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진한(辰韓)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는데요.

① 첫 번째가 이씨의 조상인 알평이 다스리는 알천 양산촌인데,

알평은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다.

② 두 번째는 정씨의 조상인 소벌도리가 다스리는 돌산 고허촌으로,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왔다.

③ 세 번째가 손씨의 조상인 구례마가 다스리는 무산 대수촌으로,

구례마는 하늘에서 이 산으로 내려왔다.

④ 네 번째가 최씨의 조상인 지백호가 다스리는 취산 전지촌인데

지백호는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왔다.

⑤ 다섯 번째가 배씨의 조상인 지타가 다스리는 금산 가리촌으로,

지타는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왔다.

⑥ 여섯 번째는 설씨의 조상인 호진이 다스리는 명활산 고야촌인데

호진은 하늘에서 금강산(경주 북쪽에 있는 산)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죠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 방금 말씀드린 여섯 마을의 족장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회의를 하였는데요.

 

“우리에겐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소.

그래서 백성들은 제멋대로 행동하여 질서가 잡히지 않고 있소.

이제 우리에게도 임금님이 있어야겠소.”

 

“그래야지요. 임금님을 모시고 나라를 세워 도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임금님은 마음이 어질고 슬기롭고 덕과 용기를 갖춘 인물이라야 하오.”

 

“그런데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이런 논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 장소인 알천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저것이 무엇이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봅시다.”

“앗! 저기 양산촌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소.”

“흰 말 한 마리가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무슨 징조일까?”

그들은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는 곳으로 몰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흰 말이 절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자줏빛 알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흰말은 몰려온 사람들을 보더니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알을 깨어 보니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졌겠죠.

 

“우선 목욕부터 시킵시다.”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알에서 나온 아기를 데리고 가서 동천 냇물에 목욕을 시켰습니다.

 

깨끗이 씻긴 아기의 몸에서는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었구요.

그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햇빛과 달빛이 더욱 밝아지기까지 하였다네요.

그러자 아기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지었구요.

여기 참석한 여섯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임금님을 내려 주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임금님이 내려오셨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왕후를 찾아 짝을 지어야 하오.”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백성들의 바람대로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

한 마리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기의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곧 아기를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데요

 

부리가 빠진 시냇물이라 해서 시내의 이름을 발천이라고 했구요.

여섯 마을의 족장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기를 받들어 길렀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난 알의 모양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성을 ‘박씨’라고 지었고,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지었습니다.

13세가 되던 해 여섯마을 족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받들고

알영을 왕비로 삼아 나라를 세우니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처음에 나라 이름을 ‘서라벌’ ‘서벌’ ‘사라’ ‘사로’라고 하다가

‘계림국’이라고도 고쳤으나 후세에 와서 ‘신라’라는 이름으로 정했구요.

 

혁거세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던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죽은 몸이 땅으로 떨어졌는데요.

그 후 왕비도 왕을 따라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땅에 흩어진 왕의 몸을 한자리에 모아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며 왕의 몸을 한자리에 모으지 못하게 방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혁거세 왕의 머리와 팔다리를 따로따로 다섯 개의 무덤을 만들고

그것을 사릉(蛇陵)이라고 했구요.

혁거세 왕의 뒤를 이어 태자 남해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또,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박씨 성을 쓰게 된 이유로

“혁거세가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또는 ‘밝다’라는 뜻에서 박씨 성을 쓰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죠

 

하지만, 박씨 성을 얻은 과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박혁거세가 토착민 출신인가,

아니면 이주민 출신인가에 대한 대답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그런데, 박혁거세의 탄생배경과 관련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재미있는 기록이 또 있습니다.

김부식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겪은 일을 삼국사기 신라본기 맨 마지막에 적고 있는데요,

 

“송나라 사람 왕보가 한 사당에 걸린 선녀의 초상을 보여주는데,

이이는 고려의 신이라 하며, ‘옛날 어느 제왕가의 딸이 남편 없이 임신해

사람의 의심을 받게 되자, 곧 바다를 건너 진한에 도착해 아들을 낳았는데,

곧 해동의 첫 임금이다…(하략)”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선도산 신모는 본디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娑蘇)였데요

어려서 신선의 술법을 익혀 동쪽 나라에 와서 살더니,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았다…(중략)…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왔을 때, 성스러운 아들을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게 하였으니,

혁거세와 알영 두 성인이 그렇게 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혁거세는 중국 황실의 딸 사소의 아들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긴 어려운 것 같죠.

대한민국 성씨(3), 박씨(朴氏)의 유래, 왜 박씨는 본관이 달라도 결혼하지 않나요?

여러분! 혁거세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있다지만 박씨가 우리나라 성씨인것만은 확실하죠

오늘은 지난번 김씨 이씨에 이어 박씨의 기원과 본관, 유래등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시간에는 최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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