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崔氏의 유래와 기원, 본관은?
지난해부터 이 채널에서 우리나라 성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고 있는데요.
김씨, 이씨, 박씨에 이어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많다는 최씨에 대해
그 기원과, 본관. 유래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최씨(崔氏)는 우리나라 성씨 중 김씨·이씨·박씨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인구가 있는 성씨라는 건 아시죠
성씨별 인구조사는 통계청에서 15년마다 한번씩 하는데요.
지난 2015년 조사에서 최(崔)씨 인구는 2,333,927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네 번째로 많은 성씨이죠
최씨의 시조는 신라를 건국한 6부족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알려져 있죠.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소벌도리를 정씨의 시조라고 하고,
진지촌의 지백호를 최씨의 시조로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유사 외에 삼국사기 등 대부분의 정사서에서는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를 최씨의 시조로 기록하고 있어,
최씨 문중에서는 소벌도리를 최씨의 시조로 삼고 있는겁니다
최씨는 문헌에 387본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시조가 분명하게 확인된 본관은 43본이랍니다.
그중 대부분은 신라 6부 촌장이었으며, 박혁거세의 양부였던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와 그 24세 손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들입니다.
즉, 소벌도리의 자손이면서 최치원의 윗대에서 갈라진 본관들과
최치원 아랫대에서 갈라진 후손들인 것이죠.
하지만, 일부는 고구려 계통과 외래(중국) 이주민을 시조로 삼고 있는 본관도 있고,
김씨에서 최씨를 사성 받은 본관도 존재합니다.
또한 같은 소벌도리의 후손이면서 최씨를 쓰지 않고,
다른 성씨(진주소씨·晉州蘇氏)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씨의 주요 본관은 경주(慶州)를 비롯하여 전주(全州)·해주(海州)·강릉(江陵)·
탐진(耽津)·수성(隋城)·삭녕(朔寧)·화순(和順)·초계(草溪)·월성(月城)·
영천(永川)·수원(水原)·강화(江華)·충주(忠州)·낭주(朗州)·동주(東州) 등이 있는데요
그중 김씨였다가 사성을 받아 최씨가 된 수성(수원)최씨가 있고요,
중국 계통의 충주최씨가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崔氏의 유래와 기원, 본관은?
그럼 본관별 최씨 현황을 한번 볼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최씨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로 전한다고 했죠
하지만, 신라 말까지 세계를 상고할 수 없어,
대부분의 본관들은 신라 말에서 고려 중엽의 인물을 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인구가 있는 경주최씨의 시조는 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입니다.
그의 8세손으로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최애가
처음으로 경주를 관향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최치원과 함께 신라 말 3최의 하나이며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언위(彦僞)를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어요.
최치원의 후손으로 경주최씨에서 분파, 관향을 달리하는 계통으로는
월성최씨를 비롯하여 강화·흥해·통천·광주(廣州)·진주·청주·원주·
계림·고부·태인·영흥·연풍최씨 등이 전합니다.
월성최씨는 시조 최치원과의 계대를 헤아리기 어려우나
조선 선조 때 무과에 올라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최진립(崔震立)을 시조로 삼아 경주에서 분적했다고 합니다.
강화최씨는 고려시대에 상서좌복야를 지냈다는 시조 최익후(崔益厚)가
최치원의 10대손으로 경주에서 분파한 것으로 전하고 있구요

역시 최치원의 후예로서 조선조의 최득보(崔得寶)를 시조로 하는 광주최씨는,
득보가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뒤 평안북도 안주로 옮겨가 살면서
이전의 거주지였던 광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밖에 최치원의 15세손 최연(崔淵)이 흥해로,
최윤순(崔允順)이 계림으로 각각 분적했다고 합니다.
또, 전주최씨에는 본관은 동일하되 시조를 달리하면서
서로간의 소목을 밝힐 수 없는 4개의 계통이 있는데요.
최균(崔均·고려 인종 때 등과하여 명종 때 예부낭중을 지내고
完山府院君에 추봉됨)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와
최순작(崔純爵·고려 정종 때 등과하여 문하시중을 지냄)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최아(崔阿·고려 충숙왕 때 完山君에 봉해짐)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그리고 최군옥(崔群玉·고려시대에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내고
完山府院君에 봉해짐)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있습니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전주최씨에서 분파된 동성이본(同姓異本)으로
영천·흥해·순천 등이 있으며 초계·양천 등도 그 뿌리를 전주최씨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합니다.
문헌에 의하면 전주최씨 사도공파의 시조 최균의 후손 중
10세손 최한(崔漢)이 영천으로 분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천최씨 족보에서는 선대가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명종 때 벼슬을 하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지금의 영천)에 봉해짐으로써
영천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전주최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잖아요.
흥해최씨는 최균의 10세손인 최호(崔湖)가 검교대장군을 지내고,
곡강군(曲江君·곡강은 지금의 흥해)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 세거의 인연을 따라 흥해를 관향으로 삼아 분적했죠.

초계최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충익대보조공신(忠翼戴補祚功臣)이 되고
팔계군(八溪君·팔계는 지금의 초계)에 봉해진 용궁(龍宮)으로 전하구요
그는 또, 전주최씨 문열공파의 시조 최순작의 후예잖아요.
또 광양최씨의 선대는 초계최씨와 같으며, 시조는 최한영(崔漢英)이랍니다.
해동공자(海東孔子) 최충(崔沖)을 배출한 해주최씨의 시조는 최온(崔溫)인데요.
해주는 최온의 선대부터의 세거지였으므로 관향이 되었다고 합니다.
뒷날 청송·부안·아산·용궁최씨가 해주최씨로부터 분파한 것으로 전하구요.
부안최씨의 시조로 전하는 최창일(崔昌一)은 고려시대에 공조전서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부안으로 낙향했습니다.

동주최씨는 태사공 최준옹(崔俊邕·고려 태조를 도와 三韓功臣이 됨)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최준옹의 증손 최석(崔奭)이 관직에서 물러나 동주에 정착한 것이 관향으로 삼게 되었죠.
그리고, 강릉최씨는 본은 같되 시조를 달리하는 3개 계통이 있습니다.
최필달(崔必達·고려 태조를 도와 삼중대광으로 慶興府院君에 봉해짐)을 시조로 하는 경주계,
최문한(崔文漢·고려 충숙왕의 부마로 뒷날 강릉으로 은거함)을 시조로 하는 강화계,
대경공(大卿公)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하는 전주계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삭녕·화순·낭주·수성·충주·간성·양주·개성·나주·용주·직산·황주·안동·
영암·완산·정주·죽산·진산·우봉·상원·하양·하음·한남·풍천등을 본관으로 하는 최씨가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崔氏의 유래와 기원, 본관은?
그럼 최씨의 기원과 유래는 어떨까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최씨는 신라 6부족의 하나인 돌산 고허촌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있다고 했죠.

신라 6부족은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
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 취산 진지촌(?山珍支村), 금산 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 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잖아요
하지만, 신라에서는 3대 유리이사금 때 6부족에게 사성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소벌도리의 성씨가 최씨는 아니었죠.
즉, 돌산 고허촌이 최씨성을 하사받고,
그 시조로 소벌도리를 모시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6부에 성씨를 하사한 왕은 3대 임금인 유리 이사금인데요.
유리왕은 6부의 지명을 개칭하여, 알천 양산촌을 급량부(及梁部),
돌산 고허촌을 사량부(沙梁部), 무산 대수촌을 잠량부,
취산 진지촌을 본피부(本皮部), 금산 가리촌을 한저부(漢저部),
명활 산고야촌을 습비부(習比部)로 하면서 6부의 촌장에게 성을 내렸습니다.

양산촌의 알평에게는 이씨, 고허촌의 소벌도리에게는 최씨,
대수촌의 구례마에게는 손(孫)씨, 진지촌의 지백호에게는 정(鄭)씨,
가리촌의 기타에게는 배(裵)씨, 명활촌의 호진에게는 설(薛)씨를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와 다른 계통의 최씨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는데요.
최치원의 금석문으로 알려진 쌍계사 진감선사비에 ‘진감선사’의 속명이 최씨임을 밝히며,
고향은 전주 근처의 금마로 적고 있습니다.
또, 진감선사의 선조에 대해선 수나라 때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포로가 되어
고구려에 눌러 살다가 고구려가 멸망한 뒤 금마로 내려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즉, 신라 외에 고구려 계통에서도 최씨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또 다른 최씨 기록을 보면, ‘낙랑의 최리(崔理)’가 있는데요.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왕자 호동을 사모해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의 아버지 이름이 최리입니다.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은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과 구분하여
대동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최씨 낙랑’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崔氏의 유래와 기원, 본관은?
소벌도리의 후손으로 알려진 진주소씨의 기록을 살펴보면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蘇城)의 하백(河伯)에 봉해지고
기원전 2266년 소성이 단군조선에 영속되면서 기씨를 소씨로 고쳤습니다.
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이라고 하죠
따라서 최씨의 기원은 산둥반도 근처에 살다가 고조선에 소속된 제후라는 설과
신라 박혁거세의 양부인 소벌도리라는 설,
낙랑공주의 아버지 이름이 최리였던 점을 볼 때 낙랑 태수의 성씨라는 설,
또는 고구려 계통에서 내려온 최씨(최치원의 진감선사비문) 등의 다양한 계통이 존재하는 셈이죠.
하지만, 13대 미추왕과 17대 내물왕, 23대 법흥왕을 전후하여
신라 내부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신라는
이 시기에 고대국가의 기틀과 신분제적 질서가 확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26대 진흥왕 때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김씨라는 성이 쓰인 것을 감안할 때,
최씨라는 성이 탄생된 것은 3대 유리왕 때가 아니라, 그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김에 최씨라고 하면 생각나는 말이 있죠
최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난다는 말인데요.
이말은 고려 말의 충신 최영 장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죠.
최영 장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죽어 가면서,
"내가 역적이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옳다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후일 최씨를 빗대면서
'최 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회자되었던 것입니다.

앉은 자리에 풀이 안난다는 崔氏의 유래와 기원, 본관은?
어때요?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많다는 최씨에 대해
그 기원과, 본관. 유래등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제 최씨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다른사람과 이야기할수 있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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