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었는데 누가, 왜 그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얼마전에 남자들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고
여자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하는 이유와
오동나무의 유래와 의미, 쓰임새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그때 오동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오동나무를 닮아 오동도라했는데
그섬에 오동나무를 베어버려 지금은 없어진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죠.
그래서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오동도는 아시죠. 아마 한두번은 다 구경하고 오셨을겁니다.
오동도는 여수시 수정동에 위치하고 있구요.
면적은 0.3㎢ 정도 되는 작은 섬이며,
여수시 앞바다 남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죠.
1968년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동도는
동백섬, 바다의 꽃섬으로 널리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입니다.
섬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었는데 누가, 왜 그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오동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그 생김새가 마치 오동잎처럼 보이고
또 그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는데 연유하여
오동도라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오동도는 어때요.
오동도는 전국적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동백꽃의 군락지로 알려졌죠.
그래서 지금도 관광객들은 동백꽃을 보러가는 것이지
오동나무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답니다
지금도 여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오동도인데요.
그래서 오동도는 여수의 상징적인 존재이며 여수의 얼굴과 같은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섬 어디에서도 오동나무를 찾아볼 수 없데요.
왜 그럴까요. 오동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왜 오동나무가 없을까요?
지금부터 그 미스테리를 한번 파헤쳐볼까 합니다
공민왕의 스승이었다는 신돈이 왜 여수의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말기에는 이곳에 오동나무 열매를 따먹기 위해
봉황이 많이 날아 온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이말을 전해들은 고려 말기 ‘요승(妖僧)’으로 불렸던 신돈이
오동도에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에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없어졌다고 전하는데요
봉황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 지역 출신의 이가 후대 왕이 된다는 징조였기 때문에
현재 왕으로서는 절대 용서할수 없는 사실이죠.
섬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었는데 누가, 왜 그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고려 말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의 스승이 되었던 신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신돈은 특히 공민왕의 신임이 두터워 항상 가까이서 공민왕을 보필하였답니다.
하루는 풍수설에 능통했던 신돈이 전라남도 땅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여수의 오동도를 지나게 되었는데요.
신돈의 일행이 오동도에 들어설 때 한 줄기의 빛이
홀연히 오동도를 빠져나갔는데요.
찰나의 일이라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신돈이 “아~”하는 낮은 탄식을 내뱉었데요.
그러고는 서둘러 배를 돌려 왕이 계신 개경으로 돌아갔습니다.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 온 신돈은 개경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공민왕을 찾아가 아뢰었는데요
“폐하, 전라도에는 오동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곳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려야 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공민왕이 무슨 연유인지 궁금해하자
신돈은 “고려의 국운이 기운다는 소문이 돌아 풍수를 살피러 전라남도 땅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다가 오동도를 가는 길에 놀라운 일을 목격했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공민왕이 이야기를 재촉했다.
“소신이 오동도에 도착했을 때 오동나무 숲에서 한 줄기 빛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봉황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공민왕은 봉황이 나타난 것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겠죠
섬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었는데 누가, 왜 그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신돈은 “전라도의 ‘전’자는 사람 ‘인(人)’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는데,
전라도의 오동도에서 봉황이 드나든다는 것은 고려 왕조를 이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징조로 보입니다."라고 했데요
그래서 이는 현왕조를 헤칠징조가 있으므로
빨리 조치를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고요
그리고 또한, 신돈은 해결할 방법도 있다며, 전라도의 ‘전’자를
사람 인(人)자가 아닌 들 입(入)자로 바꾸라고 했구요
또, 오동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봉황이 오동도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된다고 건의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전라도의 ‘전’자가 바뀌고,
오동도의 모든 오동나무가 베어졌다고 합니다.
풍수지리에 능한 신돈이 오동나무를 제거한 것은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이 오동도에 날아들자
이곳에서 나타날 왕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죠
즉, 신돈은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고려 말의 현실적 상황이 풍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오동나무를 벌목하고 지명의 한자를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신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전라도 출신의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말았죠.
그러고 보면 이름이란 것은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 같죠.
신종 식물 명명을 위해 고민하는 식물학자를 보면서도 매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식물명이든 사람의 이름이든 또 지명이든 모든 것은 이름으로서 존재합니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말입니다
오동나무가 무성했던 섬 오동도. 지금 이곳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오동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보랏빛 꽃이 무성히 피었던
그 언젠가의 오동도를 상상할 수는 있겠죠.
섬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었는데 누가, 왜 그 오동나무를 베었을까?
오늘은 오동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오동나무를 닮아 오동도라했는데
그섬에 오동나무를 베어버려 지금은 없어진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그럴 듯 한가요.
혹시 또 오동도에 가시면 그런 이야기도 하면서 오동도를 생각해 보세요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
'식물(동물)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망시 관에 많이 사용하는 오동(梧桐)나무의 유래와 의미, 용도는? (49) | 2024.05.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