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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청하인 2024. 8. 12. 15:34

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이제 며칠 있지 않으면 광복절인데요.

여러분 50년전 광복절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혹시 아세요.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의 제29회 광복절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님께서 서거하신 날입니다.

그러나 그날 총격을 놓고 문세광 저격이 아니다는둥 각종 의혹들이 난무하던데

과연 당시 어떠했는지 그때 동영상을 보면서 그시절로 한번 가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때는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23분.

광복절 29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고 있을 때 였습니다

 

"조국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룩돼야 한다…." 하는데요. 바로 그때.

"탕…. 탕, 탕탕, 탕탕탕."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죠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는데 대통령은 무사하지만

옆자리에 앉아있던 영부인 육영수여사님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서거하신 사건이죠

 

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당시 저격수 문세광은 곧바로 현장에서 체포되었구요,

정부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는데요.

그때 공개된 문서에는 이때 파악한 현장 상황과 범행 모의 경위 등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는데 한번 볼까요.

 

8월 15일 당일, 문세광은 이날 오전 8시쯤 조선호텔을 나와 국립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검문을 수월히 피하기 위해 미리 포드 검은색 승용차를 빌려놓았구요

 

극장 입구를 무사히 통과한 문세광은 식장 입구에서 한 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며 귀빈 행세를 해 식장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 뒤. 왼쪽 열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문세광은

준비해간 38구경 스미스 앤드 웨슨 리볼버 권총을 꺼내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첫 번째 총탄은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했습니다.

직후 문세광은 다리를 끌며 통로를 따라 곧장 연단으로 접근했데요.

이어서 "탕" 두 번째 총알이 박 대통령이 서 있던 연단 왼쪽에 박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즉각 자세를 낮춰 연설대 뒤로 몸을 숨겼죠. 세 번째는 불발탄.

 

그리고 네 번째 총알이 안타깝게도 귀빈석에 앉아 있던

육 여사의 머리 오른쪽에 명중했습니다.

 

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그때 한 참석자가 문세광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넘어지기 직전

오케스트라석 분리대를 짚고 비틀거리며 또 한발을 발사했는데요.

이 총탄도 다행히 연단 뒤 태극기에 박혔데요.

이 모든게 불과 5~6초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때서야 좌석 앞쪽에 앉아 있던 경찰관들이 문세광의 머리를 권총 손잡이로 내려친 뒤

이중삼중으로 덮쳐서 현장에서 검거를 했죠.

피격을 당한 영부인은 곧장 앰불런스에 실려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오후 7시 결국 숨을 거두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전국민이 영부인을 애도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머리에 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하던 연설을 끝까지 마무리하셨잖아요.

과연 대통령의 그런 모습을 보고 존경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요?

 

또, 첫 번째 총알이 자기 허벅지에 쏘는것이나,

세번째 불발탄이 없었다면 박대통령도 정말 끔직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하늘이 도운것이네요


당시 동영상을 한번 잠깐 볼까요

 

 

그리고 문세광은 재판에 회부돼 1~3심에서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사건 발생 127일 만인 그해 12월 2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시 정부 당국은 사건 발생 불과 이틀만에 “북괴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암살 시도 사건”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많은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는데요.

그간 제기된 가장 큰 의문점은 "과연 문세광이 쏜 총알이 영부인을 명중시켰나"였습니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당시 현장 비디오 등을 판독해보면

문세광이 쏜 다섯발 중 한발은 연단 위 천장을 맞혔다"고 주장하는데요.

 

허벅지.연단.태극기로 향한 3발과 불발탄을 제외하면 남는 건 한발.

그 한발이 천장을 맞혔다면 육 여사를 쏜 총알은 어디에서 발사됐느냐는 것입니다.

 

또, 당시 현장에선 모두 7발이 발사됐다는데요. 두발이 더 있는 것입니다.

그중 한발은 경호원이 문세광을 겨냥해 쏜 것인데

빗나가서 합창단원석에 앉아 있던 여고생을 맞혔고요

그래서 나머지 한발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으나 최종 수사결론은

'문세광의 네 번째 총알'이 육 여사를 숨지게 한 것으로 내려졌습니다.

 

당시 수사 당국 주변에서는 한동안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도 했고요, 조총련 등에서도 '음모설'을 유포하기도 했습니다.

 

또 경호원이 응사한 ‘두발’ 가운데 한 발이 숨진 합창단원에 맞았다면

나머지 한발은 어디로 갔는가?

어떤사람은 경호원이 쏜 총알에 육영수씨가 맞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또, 문세광은 연단 왼쪽에서 뛰어나오며 총을 쐈고, 영부인은 연단 오른쪽에 앉아 있었는데요.

따라서 영부인은 머리의 정면 혹은 오른쪽 부위에 총을 맞았어야 하고,

물리적 법칙에 의해 머리는 반대편인 왼쪽으로 기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를 생중계한 미국 <CBS 방송>의 녹화 테이프를 보면

육씨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었는데요.

이것도 문세광이 아닌 ‘제 3의 인물’에 의한 저격설이 제기되는 부분이랍니다.

 

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또 문세광이 어떻게 검문을 통과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끊기지 않고 제기되었죠

문세광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 비표도 없이 검문을 무사 통과한 점,

김포공항으로 입국할 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권총을 숨겨왔다면서도

전혀 적발되지 않은 점, 일본인 명의의 위조 여권으로 재일동포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었죠

 

그러나 의혹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혹이 꼬리를 무는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러니 우리들은 그냥 정부 조사결과를 믿어야하고 의혹은 그냥 카더라 방송으로 지나쳐야겠죠

육영수여사 서거 50주년, 당시 상황과 누가 쏜 총알인가 의혹은?

오늘은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의 제29회 광복절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님께서 서거하신 50주년을 앞두고

그날 총격이 문세광 저격이 아니다는둥 각종 의혹들이 난무하던데

과연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아보았는데요.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