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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나무!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청하인 2024. 5. 2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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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잎이 바람 소리를 달고 있다

저 소리 받아 적으면 바람경(經) 될까

새소리 물소리 더 보태면 소리경 될까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法身)이고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이네

 

세상의 소리 중에

저 소리만 한 절창이 또 있을까

바람 같았으면 벌써

한 소절 따라 불렀을 것인데

 

절필한 내 목소리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재창할 수 없다

살다가 비탈지면

한 두어 달 무심하다가

자연을 쓰는 서기(書記)나 되었으면

언어로 절 한 채 지었으면

한 구절도 생략할 수 없는 구절로

 

 

 

천양희 시인의 시집 『지독히 다행한』에 나오는 시 「생략 없는 구절」이다.

시인은 모감주나무의 녹음이 점차 짙어져 바람이 지나가면서

잎을 흔들어 내는 소리를 불교의 경(經)으로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왜 시인은 '언어로 절 한 채 지었으면' 소망하면서 많고

많은 나무 중에서 모감주나무를 소환했을까?

 

천양희 시인의 시집 『지독히 다행한』에 나오는 시 「생략 없는 구절」이다.

시인은 모감주나무의 녹음이 점차 짙어져 바람이 지나가면서 잎을 흔들어

내는 소리를 불교의 경(經)으로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왜 시인은 '언어로 절 한 채 지었으면' 소망하면서

많고 많은 나무 중에서 모감주나무를 소환했을까?

 

 

 

우리의 나무!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6월 때 이른 더위 속에서 모감주나무에 피는 황금색 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대구 두류네거리에 서있는 모감주나무에 노란꽃물이 들기 시작했다.

꽃은 눈에 익었지만 나무 이름은 아직도 낯설어 하는 시민이 많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꽃대에 머잖아 꽃이 촘촘하게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낼 태세다.

꽃이 그리 흔하지 않은 시기에 나무 전체가 동화 속의 금빛 꽃들로 뒤덮인 채로

한 스무 날을 아주 고고하게 초여름을 보낼 것이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4개로 길쭉한 타원형이며 한 쪽에 모여 뒤로 젖혀져 있고

아래 부분은 붉은색인데 봉선화 물들인 어린이 손톱 끝처럼 깜찍하다.

영어로는 골든 레인 트리(Golden rain tree)로 황금색 꽃비가 내리는 나무다.

낙화 때 나무 아래에는 온통 꽃잎이 널브러져 노랗다.

 

나뭇잎은 짙은 녹색으로 어긋나게 달리는데 아까시나무 잎처럼

깃꼴겹잎으로 작은 잎은 달걀모양이다.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불규칙하게 있으며 깊게 파여 있다.

 

 

◆모감주나무 종자로 염주 만들어

 

모감주나무는 꽃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게 종자다.

가을에 작은 청사초롱을 연상시키는 꽈리같이 생긴 열매가 벌어지면 안에 3개의 씨가 붙어 있다.

검은색을 띠는 팥알만 한 씨를 꿰어 염주를 만들기 때문에 '염주나무'로도 불렸다.

(피나뭇과의 염주나무가 엄연히 따로 있다) 씨는 단단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윤기가 더 나고 큰스님들의 염주에 주로 사용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를 불교와 인연이 아주 깊은 나무라고 하는 이유다.

 

박상진 전 경북대 교수의 『우리나무 이름 사전』에는 중국 송나라 때 유명한 스님인 묘감(妙堪),

혹은 불교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을 일컫는 '묘각(妙覺)'에 구슬을 의미하는

'주(珠)'가 붙어 '묘감주나무'나 '묘각주나무'로 부르다가

지금의 모감주나무가 됐다고 나온다.

 

 

 

모감주나무 씨앗를 금강자(金剛子)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부른다.

금강이란 말은 금강석의 단단하고 변치 않는 물질적 특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는 도를 깨우치고 지덕이 굳세며 단단하여

모든 번뇌를 떨칠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우리의 나무!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고려사』에 "숙종 4년 임금은 절에 머물면서 금강자와 수정염,

주각 한 꾸러미를 시주하였다"고 전해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6년 명나라 사신이 금강자 3관을 예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왕실에서 사용하는 염주를 만드는 데 귀중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염주의 구슬을 만드는 데 피나무 열매, 무환자나무 열매, 율무, 수정, 산호, 향나무 등도 사용하지만

금강자염주는 공덕이 높은 큰스님들도 아끼는 귀한 물건이었다고 했다.

 

 

 

◆대구 내곡동·포항 발산리 군락

모감주나무의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주장이 한때 있었지만

자생하는 지역을 볼 때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고유 식물로 보고 있다.

예전에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나 인천 옹진군 백령도 등

서해안에서 군락지가 발견돼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건너온 나무로 추정됐지만

경북 포항시 동해면 발산리와 대구 동구 내곡동의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우리나라 자생설에 무게가 실렸다.

 

영일만의 작은 어촌인 발산리 가파른 야산에는 수령 80년에서 1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모감주나무 300여 그루가 터를 잡고 자라는데 199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대구시 동구 내곡동 개울 위쪽의 자생지에도 나이가 350년 넘는

큰 나무 몇 그루와 수십 년생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1990년에 대구시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다.

 

 

우리의 나무!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경북 안동 송천동에 있는 모감주나무 한 그루는 나이가 370년이 훨씬 넘고

높이 11m, 줄기둘레 1.5m의 노거수로 1984년 말에 경상북도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됐다.

이 나무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석문 정영방의 둘째 아들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석문이 별세하자 아들 정행은 영양에 찾아가 평소 아버지가 좋아했던

나무를 가지고 와서 현재의 자리에 심었다.

석문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윤선도의 '보길도원림' 양산보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히는 영양 서석지(瑞石池)를 조성한 인물이다.

모감주나무를 흔히 볼 수 없던 시절을 감안하면 나무를 보는 안목 또한 탁월했던 것 같다.

 

이 밖에도 대구 달성군 화원동산, 수성구 천을산,

경북 영천시 금호강 유역, 포항시 연일에도 군락이 있다.

 

 

 ◆모감주나무 이름 유래

요즘은 공원이나 거리에 많이 심어져 예전처럼 보기 힘들지는 않아졌지만

모감주나무에 대한 과거 기록이 변변치 않으니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이 분분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열매로 염주를 만들다 보니 불교와 인연이 많은 나무라고 여겨서

묘감(妙堪) 스님의 이름, 혹은 불교 깨달음의 높은 경지인 묘각(妙覺)에서

모감주나무 이름이 파생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중국에는 왜 '묘감나무'나 '묘각나무'라는 이름이 없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모감주나무의 중국 이름은 난수(欒樹) 또는 목란(木欒)이다.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우리나무 이름 사전』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귀하고 신비한 구슬을 뜻하는 감주(紺珠만지면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감색의 보주로 당나라의 장열이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란 단어가 있는데,

그 씨앗으로 감주에 버금가는 좋은 염주를 만들 수 있는 나무라서

'목감주(木紺珠)나무'라고 부르다가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또 오랜 세월 사용해 닳은 염주를 뜻하여 모감주(耗減珠)라고 한다는 설(說)도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무환자나무의 '모관쥬'에서 모감주나무 이름의 변천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모감주나무는 나무 자체의 활용 가치가 높다 보니 요즘 도심 공원에 많이 심어져 있다.

 

추위에 잘 견디고 가뭄에도 강하며 척박한 토양에서는 물론

바닷가 염분이나 대기오염에도 강하여 도시의 조경수로 손색이 없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뿌리가 깊어 강한 바람이나 태풍에도 잘 버틴다.

어릴 때는 성장이 늦지만 자라면서 점점 빨라진다.

 

 

우리의 나무! ‘황금색 꽃, 화엄(華嚴)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

봄에는 새순이 불그스레하고 여름엔 노란 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에는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겨울엔 열매가 고동색의 등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철마다 다른 자태를 보여준다.

대구수목원이나 달성공원의 넓은 뜰 한쪽에 자리 잡은 모감주나무는

보는 사람들의 눈을 호강시키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을 때

백화원 영빈관 앞마당에 남한에서 가져간 모감주나무를 기념식수했다.

또 청와대를 떠나기 전 녹지원에 모감주나무를 심었다.

모감주나무의 꽃말은 '자유로운 마음'이고 나무는 '번영'을 뜻한다.

그래서 모감주나무를 심었던 걸까. 이상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

 

(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 오디세이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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