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가서 주먹자랑! 여수가서 돈자랑!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마라
오늘은 구전이야기중에 전라도에가서 절대 자랑하면 안되는 것
세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보고
왜 그런지 그 유래도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8도강산은 저마다 특색이 있죠. 서울이나 부산에는 사람이 많고,
강원도는 산비탈이 많고 남해나 서해안은 섬이 많고 갯벌도 많죠
먹거리도 보면 춘천에 가면 닭갈비가 유명하고 전라도 전주에는 비빔밥,
흑산도에는 홍어가 유명하고 경상도 울진영덕은 대게,
포항에는 과메기가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죠
벌교가서 주먹자랑! 여수가서 돈자랑!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마라
그런데 전라도에 가면 절대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게
3가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무엇일까요?
3가지를 다 아실려면 이 방송을 끝까지 봐 주시기 바랍니다

1. 벌교가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
벌교는 꼬막이 많은걸로 아는데 왜 주먹자랑일까요.
지금부터 그 미스테리를 한번 파헤쳐 볼까요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 이 말은 벌교에 깡패가 많아서라는
이해 할수도 있지만 의외로 이유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바로 안규홍이란 인물이 그 원인입니다.
안규홍은 양반출신의 의병장으로 벌교에서 항일운동을 할때였는데요.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가 벌교장에서 아낙네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일본 순사를 한주먹으로 한방에 때려눕힌 사건에서 시작했다고 할수 있죠.
이처럼 그는 벌교에서 일본 순사를 때려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항일운동에 적극적인 인물로 일본군 뿐만 아니라 친일파,
악덕 관리 등을 처벌하고 그들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한때 벌교와 거기가 속했던 낙안군 지역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나,
남한 대토벌 작전에 나선 일본군의 공격으로 체포당해 결국 1910년 순국하였죠.
그가 워낙 유명하고 일본군의 혀를 내두르게 한 지라
1908년 낙안군을 폐군하고 둘로 나눴는데요.
현재의 벌교읍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성으로,
읍성을 포함한 나머지 지역은 순천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이 인물에 대한 트라우마와 보복으로 그렇게 했다고 전해지죠.
이후 일제에 항거해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보성 사람들의 용기와 패기에 붙여진
일본의 두려움이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표현으로 굳혀졌다고 합니다.

이와는 또 다른 유래도 찾아볼수 있는데요.
바로 머슴이 내지른 의기의 주먹 안담살이가 있구요.
벌교주먹의 진실 김항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네요
먼저 머슴 ‘안담살이’가 내지른 의기의 주먹이야기인데요.
벌교는 해로(海路)만 강했던 게 아니죠.
어느 순간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 보성을 잇는 육로의 요충지가 됩니다.
고흥 사람은 벌교 땅을 밟지 않고는 절대로 광주에 갈 수 없었죠.
집단 이주한 일본인들도 넘쳐났습니다.
3만명이 안되는 벌교인구가 그 당시 5만 명에 육박했으니
그 규모는 짐작하고도 남는답니다.

벌교는 지금도 일본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요.
그곳은 일본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던 곳으로 6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선창에 통통배가 득시글거리고, 좋은 상권은 일본인들이 다 잡고 있었죠.
개인이 방죽을 막아 간척사업을 할 정도였으니 그 세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때 이 나라는 우리 땅이었지만 남의 땅이었죠. 일본인이 주인이었잖아요.
경찰과 헌병은 일본인만 보호했습니다.
어느 곳보다 일본인이 많이 들어와 살았다면 원래 벌교 사람들의 삶은 뻔하겠죠.
일본인 때문에 핍박받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벌교 주먹의 실체가 다시 드러났는데요.
벌교의 주먹을 의기의 주먹이라고 알린 장소는 바로 다름아닌 소화다리였는데요
의기의 주먹이란 불후의 명언을 만든 주인공의 이름은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다만 ‘안’씨 성만 알려졌습니다.
그는 머슴이었고 그것도 가장 직급이 낮은 ‘담살이’였습니다.
그래서 벌교 사람들은 안담살이라고 부른답니다.

하루는 안담살이가 소화다리에 나무를 팔러갔습니다.
그런데 일본 헌병 하나가 말 위에 올라탄 채 조선인을 채찍으로 때리고 있었어요.
당연히 안담살이는 분개했죠
그래서 일본 헌병을 말에서 끌어내려 무참하게 두들겼고,
소화다리 아래로 떨어트려 버렸습니다.
결국 일본헌병은 목숨을 잃었고요.
일단 도주했던 안담살이도 결국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천교도소에서 결국 목숨을 다 했답니다.

벌교가서 주먹자랑! 여수가서 돈자랑!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마라
벌교의 또 다른 한사람 바로 벌교 주먹의 전설, 김항수씨 관련 이야기 인데요
아까 말한 안담살이가 벌교 주먹의 시초라면 김항수는 벌교 주먹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그 또한 의기의 주먹이요. 잠깐 스쳐간 주먹이 아니랍니다.
한때 전라도 일대를 완전하게 평정했던 진정한 주먹입니다.
그는 벌교 태생인데 그의 집안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고 아들은 당시로서는 엘리트였데요
그런데 문제는 다름아닌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습니다.
조선인은 아무리 재력이 있고,
머리가 뛰어나도 일본에 빌붙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는 어느 순간 공부를 접고, 조선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본학생들을 깨고 다녔습니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그의 손발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할정도로 엄청 빨랐데요
더구나 그에겐 든든한 뒤가 있죠. 빽이 있었던 겁니다.
설사 사고를 쳐서 잡혀 들어가도 판사인 아버지 힘으로 금방 풀려 나잖아요.

벌교에는 김항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광주에서 출발한 기차는 그가 탈 때는 유일하게 역이 아닌 곳에서
꼭 한 번 정차를 하는데 바로 그의 집 앞에서였습니다.
그만큼 김항수의 주먹은 대단하였고 전국구 주먹이었다고 합니다.
하기야 기차가 중간에 설 정도였으니깐요.
그래서 누구나 그를 보면 눈을 깔게 될정도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답니다
아주 머리도 명석하고, 양아치 깡패들처럼 몰려다니는 법이 없었으며,
그는 항상 혼자이거나 수하 두엇만 거느리며 멋지게 살았으나
말로는 비참하게 마감했다고 합니다

벌교가서 주먹자랑! 여수가서 돈자랑!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마라
2. 여수가서 돈자랑질 하지 말라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마라는 말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은
여수를 중심으로 선원들이 밀수를 많이 해서 숨겨진 돈이 많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1930년대이기에 실제로 밀수로 인하여
돈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기에
밀수이야기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아요.
1930년대이기에 ‘여수’와 ‘돈 자랑’을 연결하는 고리에는
일본에 의한 항구 개항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조선이 부산항을 시작으로 원산, 인천을 개항한 것은
1876년 강화도 불평등조약에 따라서죠

여수항이 일본에 의해 개항항으로 지정 된 때는,
1918년 이후 순천에서 연결되는 1930년 전라선이 개통되고,
여수와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드나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벌교 작은 항구는 전남 동부지역에서 수탈한 곡식을 배편으로 운송해 오면,
여수에서 환적하여 일본으로 보내지는등 여수는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
확장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어 돈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여수는 전남 동남권 자원 수탈항으로 고속성장을 하게되고
해방이후에도 남해안 해상교통의 주축 고장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죠.
즉, 수차례 매립공사에 따른 공사대금이 여수에 풀리고 항구가 정비되면서
어부들의 어획량도 늘게되어 자연스레 어부와 선원들도 수입이 늘자
여수에 돈을 풀게되어서 돈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벌교가서 주먹자랑! 여수가서 돈자랑!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마라
3. 순천에서 인물 자랑 하지 말라
전남 동부권의 여수와 순천 그리고 벌교는 행정구역을 다르지만 서로 이어진 지역이죠.
벌교나 여수와 달리 이곳 순천에는 인물이 많다고 합니다
흔히 인물이라고 하면 외모를 떠올리는데,
그렇다면 순천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잘생겼을까?
물론 시내 중심가에 나가보면 오가는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잘생긴 얼굴은 맞죠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인물의 도시라고 뽐낼 수 없는 일이고,
적어도 예전 미인대회에서 여왕 몇 명 정도는 배출한 전력이 있어야 하고요,
요즘 잘나가는 미남 미녀 배우도 한두 사람쯤은 순천 출신임을 뽐내며
은막을 누비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지켜봤어도 잘난 배우들 기운데
순천 출신임을 내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구요.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인기 트로트가수도 없는 것 같더라구요
순천의 100인 인물에 정치인물, 애국인물, 문화인물, 예술인물, 교육인물등을 보았을때
박노식 영화배우), 조계종을 창시한 지눌, 무소유 설파 법정 이외에는
군대생활할 때 동기가 있었던 것 외에는 특별한 분이 없는 것 같네요ㅎㅎ

오늘은 전라도에 가서 절대 자랑하면 안되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벌교에 가면 주먹자랑하지 말고 눈은 아래로 깔아야 하고요,
여수에 가서 돈자랑 하지말고, 순천에 가서 인물자랑하면 안되겠네요.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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