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1.김씨)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얼마전에 이 채널에서 우리나라 성씨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오늘부터는 그 성씨중에 김씨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는데요.
먼저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15년마다 성씨별로, 본관별로
통계청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2015년 조사당시 우리나라 성씨는 5천여개가 훨씬 넘구요.
5명이상인 성씨만도 500개가 훨씬넘었다고 합니다
그중 1위가 金氏는 전체인구의 21.5%인 10,689,959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위는 이(李)씨, 3위는 박(朴)씨, 4위는 최(崔)씨, 5위는 정(鄭)씨 순인데요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그럼 지금부터 우리나라 인구의 20%가 넘는
김씨(金氏)의 기원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김씨는 김수로왕계의 김해김씨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김알지계의 신라김씨 계통인데요.
신라김씨 계통이나 김해김씨 계통이 아닌, 조선에 귀화한 ‘왜장 사야가’를 시조로 하는
‘사성 김해김씨’와 금녕김씨로 본관을 개칭한 김해김씨도 있습니다.(20만명정도)
또한 김씨의 본관별 인구수를 보면 김씨의 40%가 넘는다는 김해김씨를 비롯하여,
경주김씨, 광산김씨, 김녕김씨, (구)안동김씨(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로,
고려 개국공신인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김씨와 구분된다),
의성김씨, 강릉김씨, 선산김씨등 무려 3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나중 그 본관별로도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김씨라는 한자 성을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과 만주 등
동아시아 지역에 매우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데요
금나라의 금이라든지, 중국 성씨 중에 금씨는
우리나라의 김씨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김씨는 고려 때까지 금씨로 불렸는데, 음양오행에 따라
이씨조선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을 염두에 둔 태조(이성계)의 명으로
쇠금이 아닌, 성김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라네요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그럼 설화(說話)로 본 김씨(金氏)의 기원(起源)도 한번 알아볼까요
여러분! 김씨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삼국사기의 김알지 설화(서기 65년)와
삼국유사의 김수로 설화(서기 42년)인데요
먼저, 삼국유사의 김수로왕 탄생 설화를 말씀드리면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상사일에 구지봉(龜旨峰)에
이상한 소리로 부르는 기척이 있어 구간 등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는데요
(중략하고) 구간 등이 구지가(龜旨歌)를 부르고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색 줄이 드리워 땅에 닿았는데, 줄 끝에는 붉은 폭에 금합(金合)이 싸여 있어
열어 보니 해와 같이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있었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알 6개가 화하여 사내아이로 되었는데 용모가 매우 깨끗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내 평상 위에 앉히고 여러 사람이 축하하는 절을 하고 공경을 다 하였는데
그달 보름에 모두 왕위에 올랐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諱)기를 수로(首露)라 하고 혹은 수릉(首陵)이라 하였는데,
수로는 대가락(大駕洛)의 왕이 되고 나머지 5인도 각기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다음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김알지 설화입니다
65년(탈해왕9) 8월 4일 왕이 밤에 금성(金城·경주) 서쪽 시림(始林)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호공이 시림 속에서 큰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았는데요.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고 그 빛이 궤에서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어 왕께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숲에 가서 궤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는데요.
이는 박혁거세의 옛일과 같으므로, 박혁거세를 알지(閼智)라 한 선례에 따라 이름을 지었데요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였고요. 아기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였겠죠
왕이 좋은 날을 받아 태자로 책봉하니 그가 곧 김알지였어요.
그리고 시림도 계림(鷄林)으로 고쳐 국호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실린 김씨의 유래를 보면,
그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676년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제30대 문무왕비에는
아버지인 태종무열왕의 업적, 백제를 멸망시킨 과정,
문무왕이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유언 등이 적혀 있답니다.
다음 김씨의 기원으로 금석문을 들수 있는데요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발굴되고 있는데요. 역사서가 아닌 금석문을 통해서입니다
그중 하나가 김유신과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의 비문이고,
추사 김정희가 밝혔다가 200년이 지난 1961년에 우연하게 발견된 문무왕 비문입니다.
김알지 설화를 전한 김부식조차도 “신라 고사에 금궤가 하늘에서 내려와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며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성을 김씨라고 한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삼국사기에 전하는 김유신 비문에는
[김유신이 헌원지예(軒轅之裔)요 소호지윤(小昊之胤)이라]고 전하고 있잖아요.
이와 비슷한 내용은 김춘추의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비문에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1954년 중국 산시성 시안시 동쪽 교외 궈자탄에서 출토된
‘대당 고 부인 김씨 비문’에는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금천씨인데요.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의 성씨를 받게 된 세조이시랍니다.
(중략) 먼 조상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을 하였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황제께서)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투후)에 봉하시니, 7대에 걸쳐 벼슬하매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중략) 한이 난리가 나서 괴로움에 처하자 멀리 피해 요동에 살게 되었다.
(중략)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이하 생략)”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천강설화와는 달리,
신라 김씨들은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자신의 조상을 소호금천씨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김부식이 전하는 김유신 비문이나 같은 내용이 수록된 김인문의 비문에 대해
‘모화사상’에 따라 지어낸 것이라고 치부하였습니다
새로 발견된 문무왕 비문과 대당 고 부인 김씨 묘지명의 내용을 볼 때,
단순히 모화사상에 따라 지어낸 이야기로 덮어두기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죠.
다시 발견된 문무왕 비문의 내용은 더욱 구체적인데요.
그 비문에는 “15대조 성한왕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신라로 내려왔고”라며
신라 김씨의 내력을 밝히고 있으니깐요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또, 중국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시 흉노박물관에 재현돼 전시 중인 흉노족.
중국 김씨들의 시조인 흉노족 휴도왕의 태자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라는 주장이 있죠.
이를 토대로 해석할 때, 가야와 신라의 김씨 일족은 알타이 계통의 유목민족인
훈(또는 흉노)의 선우 휘하에서 왕을 하던 휴도왕 태자였다가
곽거병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뒤,
한무제의 신임을 받아 투정후로 봉해진 김일제를 시조로 여기고 있는 셈이죠.
중국 사서의 김일제 기록을 보면, 김일제 일족은 7대에 걸쳐 투후로 직분을 수행하다가
외가 쪽 친척인 ‘왕망’의 반란에 가담하여 전한을 멸하고 ‘신(新)나라’를 세웠는데요.
하지만 왕망의 신(新)나라가 망하자,
배를 타고 한반도 남쪽으로 도망쳐서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김일제가 시조이고, 문무왕의 15대조 성한왕은 ‘김알지’가 되는 것이랍니다.
이처럼 앞에서 이야기한 것 중, 신라 김씨가 삼황오제(소호금천씨)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성씨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죠
그것은 신라가 소호금천씨를, 고구려와 백제가 전욱고양씨를
자기들 조상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일제 이후에는 역사서에 분명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들이며,
역사적 증거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들이 자기의 성씨를 높이기 위해 모화사상에 입각해서 쓰였다면,
성씨의 유래를 중국의 천자가 아닌 그것도 야만족 취급을 받는 흉노의 후예에서
비롯 되었다고 기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니깐요.
성씨인구중에 가장 많다는 김씨(金氏)의 기원?
그렇다면 김씨의 기원과 진실은 무엇일까요
김씨는 깊고 다양한 뿌리가 거론되고 있죠.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즉, 고구려에서는 장수왕, 백제에서는 근초고왕,
그리고 신라에서는 진흥왕 때부터 성씨를 썼다는 주장이구요
이전의 기록에서는 왕의 이름만 쓰이고 있을 뿐, 한자 성을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또 앞에서 거론한 비문들에 김수로와 김알지 이전에
김씨 성을 쓰고 있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일부에서는 비문(문무왕 비, 김인문 비, 김유신 비, 대당 고 부인 김씨 묘비)이나
문건(삼국사기, 삼국유사)들이 통일신라 이후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위작 되거나 첨작 되었다고 주장할수도 있죠
하지만 발굴된 비문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투후 김일제 등)의
인과관계를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단순히 조상을 찬양하기 위해 첨작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까지 거론된 김씨성의 기원이 소호금천씨에서,
흉노의 선우 휘하에서, 천강설화에 따라서, 신라가 왕권수립과 계승하는 과정에서
김씨성을 쓰게 되었다는 4가지 설이 병존함을 알수 있죠
이중에 무엇이 더 합답하고 강한 설득력이 있는지는 여러분들이 판단하시면 되겠죠
끝까지 봐 주셔셔 감사하구요. 구독도 꼭 부탁합니다